[국민일보] [혜윰노트] 55년차 가수 조용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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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5-20 10:16:42 조회수 128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가왕 공연만큼은 ‘말이 필요 없다’는 정의 벗어나지 않아
하고 싶은 만큼 더 듣고 싶어

친구들과 조용필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올 초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며 지난 몇 년간 억눌렸던 공연 자아가 대폭발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 시간만 나면 뭐 재미있는 것 없나 하고 티켓 예매사이트를 들락거렸다.


마침 5월, 조용필의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가 열린다는 공지가 떴다. 이거다. 관록을 자랑하는 봄 음악 페스티벌이 성행하는 시기지만 올해는 친구들과 함께 뭔가 색다른 걸 보고 싶었다. 마침 일행 중 한 명이 어릴 때부터 조용필 콘서트를 꾸준히 봐왔다는 사람이었다. 5년 전 열린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놓친 아쉬움에 오는 6월 리모델링에 들어가면 당분간 주경기장에서 조용필을 볼 수 없다는 생각까지 더하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을 위해 자녀들이 달려든다는 ‘효켓팅’을 뚫고 적당한 위치의 좌석 3개를 예매했다. 일로 취미로 매주 습관처럼 보는 공연을 이렇게 손꼽아 기다린 건 오랜만이었다.
 

주경기장 콘서트 날엔 비가 자주 왔다고 하던데 올해는 하늘도 도왔다.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수와 관객을 위한 하늘의 고마운 배려인가 싶은 좀 낯간지러운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주경기장에 입장하기까지 평소 보기 힘든 풍경을 다수 만났다. 우선 관객 연령대부터가 달랐다. 10대에서 80대까지 골고루 분포된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부지런히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섯 걸음마다 주경기장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과 중노년 부부를 만났다. 하나같이 행복 그 자체의 얼굴이었다.


공연장 가는 길에는 십수개의 머천다이즈가 즐비한 대신 ‘조용필 음반’을 파는 공식 판매부스 하나가 단출하게 자리했고, SNS를 통해 화제가 된 무료 응원봉도 입장과 함께 수월하게 배부됐다. 혹시나 있을 불량을 체크하기 위해 입장 전 포장을 제거해 검수하는 과정도 꼼꼼하게 거쳤다. 입장부터 퇴장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차분했다. 공연장에 온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공연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련한 운용의 묘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공연은 어땠냐고? 조용필, 위대한 탄생, 주경기장.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무언가 설명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가왕의 공연만큼은 ‘말이 필요 없다’는 정의를 벗어나지 않았다. 공연 예정 시간인 오후 7시반을 살짝 넘겨 시작된 공연의 첫 곡은 ‘미지의 세계’였다. 곡이 진행되는 5분 넘는 시간 동안 반원형을 그린 대형 무대 장치와 무대 앞뒤로 쉴 새 없이 폭죽이 터졌다. 웬만한 불꽃축제가 부럽지 않은 규모였다.


동행들과 이미 첫 곡에서 티켓값은 다 털고 가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나누자마자 익숙한 노래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어제 오늘 그리고’ ‘자존심’ ‘바람의 노래’. 제목과 가사를 화면에 띄우지 않아도 성대가 알아서 따라 부르는, 시대를 초월한 히트곡들 사이 공연은 5만명 단위 노래방이 됐다가(‘친구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하계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서울 한복판이 됐다가(‘서울 서울 서울’), 거대한 록 오페라·하드 록 공연장이 됐다(‘태양의 눈’ ‘판도라의 상자’). 55년을 아우르는 세트 리스트 가운데 ‘찰나’ ‘세렝게티처럼’ ‘Feeling Of You’ 같은, 이제 갓 발매된 신곡이 위화감 없이 녹아드는 모습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저는 별로 멘트가 없습니다’ 하는 자신의 말마따나 노래하지 않는 조용필의 목소리를 듣는 건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 곡 ‘Bounce’를 부르며 외친 ‘더 하고 싶어!’라는 말이 공연을 둘러싼 모든 것을 설명했다. 더 하고 싶은 만큼 더 듣고 싶다. 동행한 친구들과 앞으로 열릴 조용필의 모든 공연을 함께하기로 피의 맹세를 나눴다. 이것으로 공연에 대한 모든 감상을 대신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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