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조선] [김작가의 글이 되는 음악] 데뷔 55주년의 조용필과 20집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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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2-20 07:36:03 조회수 185
조용필이 11월 26일~12월 4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4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사진 인사이트


올해의 노래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조용필이 2023년 발매 예정인 20집 앨범의 선공개 싱글,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이 그렇다. 55주년과 20집이라는 숫자만으로도 국내는 물론 서구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업적을 코앞에 둔 조용필이다. 설령 이 숫자에 도달한 이들이라 하더라도 대개는 회고와 정리의 색으로 현재를 칠하기 마련이다. ‘찰나’에는 그런 색이 없다. 2013년, 오랜만의 컴백 앨범이자 조용필이라는 전설을 현재와 동기화한 ‘헬로’보다 더 지금, 이 순간의 음악이다. 아니,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찰나’는 어쩌면 가장 조용필스러운 음악이다. 발표한 지 40년이 훌쩍 넘었건만 여전히 촌스럽지 않은 ‘고추잠자리’와 ‘단발머리’가 그렇다. ‘가요’라는 개념에 담긴 선입견을 스스로 부쉈던 ‘킬리만자로의 표범’ 또한 마찬가지다. ‘가왕(歌王)’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은 무의미하다. 하물며 유행 같은 건,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급했던 노래들이 아니더라도 조용필이 유행을 따라갔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나는 떠올릴 수 없다. 


‘헬로’의 타이틀 곡 ‘바운스’는 디지털 시대의 작법에 충실한, 그러나 동시대 어떤 한국 음악보다 세련된 신스 팝이다. 이 노래는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며 조용필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안착시켰다. 조용필이 늘 ‘있고 싶어 했던’ 바로 그 현재에. 8년 만의 신곡 ‘찰나’는 있고 싶어 했던 곳이 아닌 조용필의 ‘되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는 곡이다. 과거 인터뷰를 할 때마다 조용필은 자신을 ‘록커’로 정의하곤 했다. 민요, 발라드, 트로트까지, 그가 시도했던 많은 장르의 중심축은 언제나 록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록이 중심에 섰던 때는 거의 없었음에도 그는 록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2003년, 18집 ‘Over The Rainbow’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닥친 대격변 시대에 던지는 록커의 고독한 포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찰나’는 조용필이 평생 추구했던 록을 가장 최첨단의 사운드와 스타일로 구현한 노래다. 구성은 드라마틱을 넘어 스펙터클하다. ‘바운스’와 마찬가지로 해외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지만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런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그의 안목이 놀랍다. 아니, 선택을 넘어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든다. 누가 들어도 조용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고유의 발성을 유지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한국은 물론이고 서구에서조차 록의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조용필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입증한다. 


‘찰나’가 조용필의 집요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 노래는 무엇으로 듣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노래를 하이파이 오디오로 들으면, 평범한 이어폰과 헤드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압도적인 사운드가 터져 나온다. 입체감과 공간감, 깊이와 날카로움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보편적인 청취 환경을 전제하고 녹음하는 게 대중음악 리코딩의 관습이지만, 조용필은 그 ‘적정 기술’을 거부한다. 비록 많은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사운드를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기술적 한계로 표현하지 못했던 과거의 한계를 털어내듯 말이다. 이런 청취 환경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설명일 테지만, 몇 줄이나마 적음으로써 그의 찬란한 욕망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리코딩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음반 혹은 음원에 담긴 목소리는 실제와 거리가 멀어졌다. 편집과 이펙트를 통해 A를 A+로 꾸미는 게 당연한 시대다. 아니, A를 아예 B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찰나’도 이런 분칠을 거친 목소리가 아닐까. 충분히 가질 법한 의문이다. 이 노래의 전반적 사운드를 고려하면 더욱더. 그래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조용필은 무대의 가수다. 콘서트 관람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는 늘 대규모 공연을 했다. 아낌없이 투자했고 어김없이 매진이었다. 한국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블록버스터 콘서트의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극히 드문 뮤지션이 조용필이었다. 그런 조용필마저 코로나19는 피해 가지 못했다. 데뷔 50주년인 2018년 이후 한동안 조용필마저 공연을 하지 못했다. 후문으로는 공연 산업이 멈춰선 기간에 몇몇 방송사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제안했지만 일말의 여지도 없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쨌든 다시 우리 삶에 무대가 돌아왔고, 조용필 또한 그 자리에 섰다. 11월 26일부터 2주간에 걸쳐 총 4회, 2만 석의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2000년대부터 조용필 공연을 봐왔다. 언제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였지만 스케일에 비해 영상과 연출 같은 소프트웨어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비슷한 시기부터 동시대 해외 스타들의 내한 공연이 일상화했으니 더욱 그랬다. 이번에는 달랐다. 달라도 아주 달랐다. BTS 콘서트 팀이 연출을 맡아 U2 내한 공연 못지않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거대한 조화를 끌어냈다. 무대 뒤를 꽉 채운 상하로 움직이는 초대형 LED의 영상은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음악과 대체로 조화를 이뤘고, KSPO돔(옛 잠실체조경기장) 전체를 활용한 조명 또한 압도적이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골수팬이 아닌 관객이라도 세트 리스트의 모든 노래를 아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조용필은 그게 가능한 국내에 극히 드문 가수다. 오히려 공연이 끝난 후 ‘그 노래는 왜 안 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 만큼, 멘트나 개인기로 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히트곡과 명곡이 남아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유일하다 해도 좋다. ‘꿈’ ‘단발머리’ ‘그대를 사랑해’ 등 세 곡을 연달아 부르며 시작한 이 공연은 편곡 또한 시대를 넘나들었다. 1980년대 오리지널 편곡을 그대로 활용하는 노래부터 2000년대 전자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노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옛 노래를 트렌디한 편곡으로 바꾸는 경우, 때때로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적어도 조용필의 이날 공연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만약 조용필이 저 노래를 요즘 만들었다면 애초부터 저 편곡이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본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타임, 그는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찰나’ ‘바운스’ 그리고 조용필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그니처 ‘여행을 떠나요’까지. 2022·2013·1985년에 발표된 노래 세 곡이 한 시기에 발표된 것처럼 들렸다. 조용필의 목소리는 그만큼 대단했다. 리코딩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가왕의 힘과 품격은 그 자체로 굳건했다. 과거에도 그는 현재였고, 지금도 현재다. 늘 시간의 최전방에서 노래한다. 내년 말에 발매될 그의 새 앨범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55와 20이라는 숫자에 짓눌리지 않고, 조용필은 오직 조용필로 머물 것이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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