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4/12/22] 조용필과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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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12-22 12:21:22 조회수 2207
20일 자정 무렵.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단란주점에선 톱 가수들의 조용필 히트곡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이승철, 이은미, 이현우, 김경호, 조PD, 적우, 윤종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 등이 까마득한 선배 스타의 노래를 서로 부르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 모임은 조용필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배들이 요청해 열린 뒤풀이였다. 막내 격인 조PD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시작한데 이어 윤종신은 ‘고추 잠자리’, 김경호는 ‘모나리자’, 김종진은 ‘정’, 이현우는 ‘눈물의 파티’ 등을 잇달아 불렀다. 모두 고정 팬들을 가진 내로라하는 스타들이지만 이날은 한결같이 거장 앞에 선 ‘수습 가수’ 같았다. 후배들은 조용필을 연호하며 답가를 청했다. 조용필은 술 한 잔 하면 자주 부르는 가곡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훌륭한 가수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98점이 나왔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후배들은 ‘창밖의 여자’를 신청한 뒤 모두 바닥에 앉았다. 실내는 곧 조용필 독창회로 바뀌었다. ‘창밖의 여자’를 부르는 조용필을 쳐다보는 스타들의 눈은 빛났고, 이승철과 이은미 등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임은 새벽 4시경까지 이어졌다. 노래와 술잔이 몇 차례 돈 뒤 이 모임을 계기로 톱스타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가요계는 현재 골 깊은 불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스타들의 걱정은 개인적 차원에 그칠 뿐이었다. 단체 작업인 영화제작과 달리 가수들은 개인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다. 조용필은 “스타는 팬들이 만들어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스타들이 자기 울타리에만 집착한다면 ‘딴따라’라는 사회적 홀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은 팬들에 대한 실례”라고 말했다. 이승철은 “(조용필)형이 아니면 이런 모임은 불가능하다”며 “이런 자리에서 출발해 내년에는 ‘큰 일’을 한번 해보자”고 말했다. 후배 가수들은 또 공통의 관심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록을 살려야 한다.” “스타로서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자.” “힘을 모아 mp3 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보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간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용필이 40여 년 간 개척해온 길을 넓히고 다져야 한다는 후배들의 다짐이었다. 이들이 약속한 내년 행사들이 기다려졌다. 허 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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