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弼의 서재:치유의 문장들] 05화.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 꽃씨 하나 심어 놓으리
조용필 님의 '바람이 전하는 말(30주년기념앨범)' 노래 듣기 클릭(출처 : YPC Company 유튜브 공식채널)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라 믿고, 조용필 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터널리 운영진의 전체 의견과 무관합니다.
[弼의 서재:치유의 문장들]
05화.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 꽃씨 하나 심어 놓으리
퇴근길,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내가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엔 그늘막이 없다.
벤치도 낡고 먼지투성이라 앉을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다음 버스 때까지 20분을 내내 뙤약볕에 서 있어야 할 판이었다.
더위와 피로에 몸은 지쳐있었다.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낸 터였다.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직장을 다녀야 하는가
고뇌하느라 내마음도 잔뜩 구겨져 있었다.
이런 상태로 길 위에서 20분을 서 있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날 두고 가버린 버스도, 버스 운전기사가 야속했다.
퇴근길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한 나도 미웠다.
인도 위에 쓰러져 팔다리를 버둥대며 어린아이처럼 짜증을 부리고 싶었다.
내가 택시를 잡아 탔던 그날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택시는 순조롭게 잡혔다.
내가 차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택시는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어 섰다.
나는 이참에 차창을 열었다.
그 순간, 청량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내 얼굴 위로 춤을 춘다.
내 시야를 가리던 머리카락을 모아 묶는 사이,
문득 가로수 곁에 수줍게 피어있는 작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작디 작은 꽃들이 바람 따라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를 향해 손을 번쩍 들고서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듯했다.
파란색 꽃잎이 햇살에 반짝였다.
바람에 색을 입힌다면, 바로 저 꽃과 같은 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노래 가사 하나가 떠올랐다.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
꽃씨 하나 심어 놓으리.
그 꽃나무 자라나서 바람에 꽃잎 날리면
쓸쓸한 너의 저녁 아름다울까
'어느 순간 홀로인 듯 한 쓸쓸함이 찾아'오는 날,
내게 보라고 누군가가 일부러 저 가로수 아래
바로 저 파아란 꽃을 심었는지,
'고독한 순간들을 살아'가는 날,
내게 들어보라고 조용필 님은
애써 <바람이 전하는 말>을 부르셨는지,
꽃과 바람과 노래 우연들이
하나의 운명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마치 지금 이순간의 나를 위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날 위로하기위해
준비된 선물인 듯 했다.
그렇게 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얼마 전 은퇴를 앞둔 직장 선배님과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선배님은 함께 산책을 하면서 피어있는 꽃마다
환한 표정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했다.
나는 그 분께 물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꽃을 좋아하셨어요?"
"아니, 나 어릴땐 관심도 없었어요."
"신기하네요.
사실 저도 어릴때 꽃이나 풀엔전혀 관심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사랑스럽게 보여서 자주 들여다봐요.
선배님도 그러시다니, 다들 비슷한가봐요. 왜 그럴까요?"
그러자 선배님은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했다.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니까 그렇지요."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신의 배려라는 것이 이토록 치밀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쩌면,
힘든 오늘의 날 위해 꽃을 심어 두는 것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치밀한 배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만큼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였던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바람에 흔들리며 그 생명의 생생함을 마음껏 내지르는
파아란 꽃잎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 그 끝이 정해져 있다면
내게 주어진 일분 일초를 짜증과 분노로 채울 것이 아니었다.
택시는 파아란 신호를 받고 다시 출발했다.
꽃이 너무나 멀어져 차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의미 없이 느껴질 때까지,
나는 열심히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파아란 꽃들을 보고 또 보았다.
꽃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에야 돌아앉아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조용필의 <바람이 전하는 말>을 찾아 내 귓가에 들려주었다.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의 가사가
내 머릿속을 관통하는 순간,
내 가슴에도 저 파아란 꽃잎의
맑고도 파아란 색이 서서히 차오르는 듯했다
상쾌하고 아름다운, 빛인지 향기인지 모를
실체 없는 그 무엇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눈부시고도 따뜻한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티 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찌뿌둥했던 나의 하루가 그렇게 다시, 맑아졌다.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거야.
*[弼의 서재 : 치유의 문장들] 다음 연재일은 6월 26일 금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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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