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논&설] '가왕' 조용필의 복귀무대, 여전히 영웅에 인색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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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0-17 22:57:46 조회수 154

'유럽 엘비스 챔피언십'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미국인들이 남부를 여행할 때 꼭 찾는 필수 코스가 있다. 남부의 수도 격인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 마거릿 미첼의 생가를 떠올릴 테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정답은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6시간 떨어진 테네시주의 멤피스다. 멤피스에는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Graceland)가 있다. 미국인이 백악관 다음으로 가장 가고 싶어하는 이곳에는 엘비스의 생가와 무덤, 그 특유의 공연 의상과 목걸이,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기본 입장료인 '엘비스 체험 투어' 가격이 44달러다. 전문 가이드의 안내로 집안 내부 관람과 엘비스와 '독점 사진' 코너를 담은 '최고 VIP 투어'를 이용하려면 평시에 196달러, 연말 성수기 땐 259달러(약 37만원)를 내야 한다. 1982년 개관 후 방문객 수만 연평균 55만명에 이르니 멤피스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곳은 1991년 록음악 관련 최초로 국가역사유적지로 등록된 데 이어 2006년에는 미국의 역사랜드마크로 선포됐다. 엘비스가 죽은 지 반세기가 돼가고 있지만 툭하면 '생존설'이 나올 만큼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한다. 1990년 개봉된 맥컬리 컬킨 주연의 '나 홀로 집에' 1편에 나온 중년의 남자 엑스트라가 엘비스라는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대중음악사에 엘비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조용필(72)이 있다. 2018년이 데뷔 50주년이었으니 국민적 사랑을 받은 시간으로 따지면 엘비스를 넘어서고도 남는다. 조용필은 특히 한국판 오빠부대의 효시라는 점에서 엘비스와 많이 닮았다. 특히 1982년 발매된 정규 4집 음반에 수록된 '비련'은 오빠부대를 대중에 각인시킨 히트곡이었다. 도입부 '기도하는~'을 부르면 늘 '오빠~'의 괴성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KBS, MBC 양대 방송국에 '비련을 틀지 말아라'는 남성과 딸을 둔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정도였다. 그해 조용필은 4집 타이틀곡 '못 찾겠다는 꾀꼬리'라는 공전의 히트곡을 내고도 '잊혀진 계절' 한 곡을 히트시킨 신인가수 이용에게 MBC 가수왕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가왕 조용필 [와이피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용필은 발라드, 트로트 등 전 장르에 걸쳐 수많은 히트곡과 이를 리메이크한 곡들 덕분에 전 세대가 사랑하는 '국민가수'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사회 공헌 면에서도 톱을 달리고 있다. 2003년 부인 안진현 씨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의 유산 24억원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기부했고, 2009년에는 조용필장학재단을 세워 소아암 어린이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부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총 88억원을 사회에 기부해 하춘화, 장나라와 함께 연예인 기부스타 톱 3에 들었다. 가요의 제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이지만 의외로 인생사에 대해 모르는 이가 적지 않다. 그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출세작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애청자들의 뇌리에 자리 잡은 탓이 큰데, 그는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0대 중반 학업을 접고 당시 한국 록음악의 산실이었던 주한미군 밤무대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기, 서울, 경복, 용산과 함께 서울의 5대 공립고 중 하나였던 경동고를 졸업했다. 조용필이 4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이다.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 후 4년 만의 라이브 무대인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유튜브 등 각종 매체로만 가왕의 노래를 접한 팬들의 갈증을 일거에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칠순이 넘었어도 조용필의 업적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가 별로 없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화성시가 2005년 송산면 쌍정리에 있는 조용필 생가 복원 등 기념물 건립 사업을 추진하다 마땅한 사업부지도 없고 조씨 본인도 거부감을 나타내 2008년 관련 계획이 중단됐다. 화성시가 최근 다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나섰지만 사정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한국이 세계 10대 강국에 들었다고 하지만 그레이스랜드는 고사하고 수도 서울에 번듯한 대중문화기념관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미자, 안성기 같은 시대를 관통하며 국민과 애환을 함께 한 '문화 영웅'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지만, 이들의 기념사업이라고 한다면 시내 문화거리 조성 등 기초자치단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병역특례니 하며 한류 아이돌 스타들에게 들이는 정성만큼이나 '살아있는 전설'에 대한 정부의 대우도 필요해 보인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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