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가왕’ 조용필의 노래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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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2-05 21:34:49 조회수 144
4년 만의 공연 마지막 무대 관전기

가수 조용필이 4년 만의 콘서트를 지난달 26~27일, 이달 3~4일 네 차례 열었다. 와이피시(YPC)·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콘서트는 4년 만에 여는 공연인데, 오늘은 마지막입니다. 끝나고 돌아가서 후회 없도록 놀자고요. (얼마나 잘 노는지) 보겠습니다.”

‘가왕’ 조용필(72)은 지난 4일 오후 6시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펼친 콘서트 ‘2022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공연은 서울에서 네 차례 연 콘서트의 ‘막공’(마지막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1만여 관객은 추운 날씨를 잊고,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잊고, ‘찰나’를 즐기듯 정말 신나게 잘 놀았다.

조용필은 상징 같은 검정 선글라스를 쓴 채 무대에 올랐다. 관객은 “오빠!” “형!”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고, “보고 싶었어요!” “조용필!”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 노래는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란 노랫말이 딱 와 닿는 ‘꿈’이었다. 이어 조용필은 ‘단발머리’ ‘그대를 사랑해’를 부르며 가왕의 귀환을 알렸다. 세곡 연이어 노래한 뒤 “4년 만이다. 40년 같은 4년이었다”고 했다. 조용필이 콘서트를 연 건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 말 같은 장소에서 펼친 데뷔 5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땡스 투 유’ 이후 처음이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그 겨울의 찻집’ ‘친구여’ 등 잔잔한 노래가 나올 땐 관객은 ‘떼창’으로 응답했고,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어제, 오늘, 그리고’ 등 빠른 노래가 나올 땐 ‘떼춤’으로 화답했다.

키보드로 시작하는 ‘킬로만자로의 표범’ 전주곡이 흘러나올 때 조용필이 과거에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이 노래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외우기 너무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이날 공연에서 조용필은 고독하게 내레이션을 읊조리며 5분20초짜리 노래를 전성기 때와 다름없이 소화했다. 조용필이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라고 노래할 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가수 조용필이 4년 만의 콘서트를 지난달 26~27일, 이달 3~4일 네 차례 열었다. 와이피시(YPC)·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용필은 과거 히트곡의 추억만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선보인 신곡 두곡도 공개하며 과거와 미래를 이어나갔다.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세렝게티처럼’과 사랑에 빠진 운명적 순간을 가사로 담은 ‘찰나’였다. 두 노래는 2013년 19집 <헬로> 이후 9년 만의 신곡이다. 조용필은 “올해 신곡 두곡을 냈고 내년엔 20집을 완성할 것”이라며 “여러 계획이 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고 있지만 열심히 하려 한다”고 했다.

이날 조용필은 로커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한국적 정서를 살려내기도 했다. 직접 기타를 메고 밴드 ‘위대한 탄생’의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과 나란히 서서 협주하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최희선은 강렬한 록 기타로 공연 전반의 사운드를 이끌었다. 국악풍의 ‘자존심’은 우리 장단의 리듬을 잘 살려냈다. 이 노래가 나올 때 무대 영상에선 단청 이미지가 수를 놓으며 한국적 감성을 드러냈다.

무대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시원시원하게 큰 대형 엘이디(LED) 전광판 여러 개가 설치돼 각 노래에 맞춰 배경을 보여줬다. ‘추억 속의 재회’가 나올 때는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이 나와 조용필이 물속에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세렝게티처럼’에선 해 질 녘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이, ‘친구여’에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단발머리’에선 꽃밭이 펼쳐졌다.

‘모나리자’로 본 공연을 마무리한 조용필은 앙코르 무대에 나와 록 느낌이 물씬 나는 노래를 불렀다. 신곡 ‘찰나’에 이어 19집 수록곡 ‘바운스’를 부른 뒤 마지막은 ‘여행을 떠나요’로 맺었다.


 

가수 조용필이 4년 만의 콘서트를 지난달 26~27일, 이달 3~4일 네차례 열었다. 와이피시(YPC)·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용필다운 무대였다. 이날도 초대 가수는 없었다. 초대 가수는 힘든 무대에서 잠시 쉴 수 있게 해주는 감초 구실을 하지만, 조용필은 초대 가수를 부르지 않는다. 히트곡이 많은데다, 무대의 일관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였다. 눈에 띄는 이벤트나 재미있는 코멘트도 별로 없었다. 조용필은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했다. ‘가왕’은 2시간여 동안 24곡을 부르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가족과 함께 온 회사원 유상진씨는 “조용필 콘서트를 4년 만에 봤는데,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며 “아들이 학기 초에 친구들 앞에 나가 ‘모나리자’를 부를 정도로 조용필 팬”이라고 말했다. 조용필이 노래로 과거와 미래를 이어나가듯, 그렇게 그의 노래는 아버지에서 아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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