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기사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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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6-11 01:15:09 조회수 6825
   어린이에게 꿈 심어준 조용필 '80년대의 가요계를 거의 독주하다시피 해온 가수 조용필이 올 들어서 만도 여러곡의 히트곡을 내어 대중연예인의 짧다는 인기를 몇년을 이끌어 보기드문 예를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치솟는 인기는 그가 외국에 나가 있는 사이에도 여전하였었다. 그런 그의 계속되는 인기로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 벌써 자서전까지 쓰고 그의 앨범집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조용필이 시골 국민학교의 교가를 만들어 주어 어린이들에게 꿈까지 심어주고 있다. 최근 안양 비산국민학교의 교가를 특별히 만들었는데 이곡은 이미 비산국민학교 어린이 합창단에 의해 녹음이 되어 학생들이 특별히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0년 개교한 이 비산국민학교는 그동안 교가가 없었는데 이번에 조용필이 학교당국의 특별부탁을 받고 작곡해준 것인데 이 학교엔 조카가 재학중이기도 하다. 조용필, 일본 메스컴서 격찬 1983-11-26  TV 가이드 최근 일본에 다녀온 조용필에 대해 일본 신문들이 또한번 크게 보도를 했다. 특히 유력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은 11월 16일지에서 조용필의 사진을 크게 넣고 8단을 할애해서 자세하게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조용필은 일본에서도 여러 레코드사에 경쟁을 일으켰다」 고 전제한 이 기사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일본에서 싱글로 15가지가 나와 히트차트 18위(양 美二郞) 58위(李成愛) 80위(조용필)를 점령하는 열기를 올렸다고 지적. 이번 11월의 일본 방문에 일본 CBS 소니가 발매한 LP 「조용필 일본노래 한다」 가 또한 높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번째로 실시될 내년 1월의 공연도 먼저번의 도오꾜, 고오베, 후꾸오까에 나고야, 오오사까, 요꼬하마의 3개 도시가 추가되었다고 발표. 日 가요계에 조용필 붐 4개 TV 서 특집쇼 방영, 순회공연도 예정 1983-10-24 중앙일보 일본가요계에 본격적인 「조용필붐」이 일고 있다. 일본의 4개 TV 방송이 오는 11월초 잇달아 특집쇼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며 최고의 연예프로모션회사가 5개도시 순회공연을 주선하는등 조군의 주가가 날로 치솟고 있다. 일본 NHK - TV 는 오는 11월 8일 『NHK 가요홀』시간에 60분짜리 특집을 마련, 「야시로 아끼」(八代亞紀)등 9명의 톱가수가 출연해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경연을 벌인다. 조용필군은 여기에 게스트로 초청출연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또 그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불러 히트시킨 가수 「야시로 아끼」와 『창밖의 여자』 를 듀엣으로 부른다. 현제 일본에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무려 12명의 인기가수들이 리바이벌해 부르고 있는데 이는 일본가요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조군은 이밖에 14일 밤에는 『한번 출연하면 인기가 3년간다』는 후지 TV 의 유명한 가요프로 『밤의 히트 스튜디오』에 출연,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일본노래 리바이벌곡 4-5곡을 부른다. 또 16일에는 니혼 TV 의 와이드쇼 프로 『노래 와이드 90분』에도 출연해 그의 히트곡을 부를 예정이다. 한편 도오꾜 TV (채널 12)는 11월 13일 상오 10시 30분 『세계인의 메시지』시간에 조군의 공연모습과 인터뷰를 담은 30분짜리 다큐멘터리 필름 『인간 조용필』을 방영한다. 이 필름은 또 도오꾜 TV와 방영계약을 맺고 있는 세계 38개국에 보내져 방영될 계획이다. 도오꾜 TV는 이미 이 프로를 위해 프러듀서 「나까마루」(中丸)씨가 지난 9월 16일 내한, 조군과 인터뷰 했으며 그의 녹음장면과 민속촌 용인자연농원 잠실체육관등의 공연모습을 담아갔다. 조용필군은 이밖에 내년 1월 18일부터 31일까지 일본 5개 주요도시에서 순회공연을 갖는다. 이 순회공연은 「사이먼과 가펑클」,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등 세계적인 톱가수의 일본 공연은 맡았던 일본최고의 연예흥행업체인 교오또·도오꾜사가 비용전액을 부담하고 주선한 것이다. 순회공연일정은 다음과 같다. ▲ 1월 22일 = 東京 NHK 홀 ▲ 24일 = 나고야 고세이넨킨 ▲25일 = 오사카 페스티벌홀 ▲28일 = 후쿠오까 선 펠러스홀 ▲ 30일 = 오꼬하마 겐민홀 인간 조용필 제작 방영 日 교육방송 'TV 東京' 1983년 10월 일본의 교육방송 'TV東京'은 다큐멘터리 '인간 조용필'을 제작, 11월 13일 '세계인의 메시지'시간에 방영한다. 또 일본교육방송과 계약을 맺고있는 세계 38개국에 보내져 교육 TV에 방송된다. '세계인의 메시지' 프로그램은 케네디, 레이건, 카터, 엘리자베스 여왕등 세계 각국의 정계 재계인사 2백여명을 다루어 왔으며, 연예인으로는 존 웨인, 촬톤 헤스톤, 잉그리드 버그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등이 나갔다. 한국인으로는 趙군이 처음이다. '인간 조용필'은 조용필을 인간적, 교육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프리랜서 中丸이 趙군을 인터뷰한 내용을, 취입장면, 한국의 명소등과 함께 보여준다.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나는 너 좋아'도 곁들였다. 趙군은 11월초 도일, NHK TV의 'NHK 가요홀'(11월 8일), 후지 TV의 '밤의 히트쇼'(14일), NTV의 '노래 와이드 90분'에 출연하며, 내년 1월에는 동경등 5개 도시에서 순회 콘서트도 가진다. 전자기술 강의 듣느라 노래 연습도 잊은 조용필 1983-09-03 TV 가이드 KBS 2 TV가 신설한 「쇼 일요특급」에 출연차 공개홀에 나온 조용필이 노래하는 것도 잊고 전자기술 강의를 듣는데 열중. 공개홀에 설치된 모니터 TV를 조정중인 기술부 직원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간 조용필은 "이스위치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묻기 시작. 연습할 시간이 됐는데도 조용필이 무대에 나타나지 않자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PD 이남기씨는 "남 속타는 줄도 모르고 너무한다."고 울상. "조용필 얼굴 좀 보자" 팬들 가요제 구경 뒷전 1983-08-21 TV 가이드 남이섬에서 열린 MBC 강변 가요제에 조용필이 게스트 싱어로 나타나자 팬들은 무대를 젖혀두고 바라보느라 한동안 어수선. 특히 출연 순서를 기다리느라 무대 옆쪽에 조용필이 앉아있자 일부 소녀팬들은 『사인 한 장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장면도 벌어졌다. 청바지 차림에 선글래스를 쓰고 아마추어 가수들리 열창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조용필은 『이중에 나의 라이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日 NHK 公演 好評 힘입어 1983-06-07 경향신문 선풍적인 일본공연을 깃점으로 국제무대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 조용필                                                                                                                                                                                                                                                                   가 따로있는데 반해 제가 가요를 포함해 뉴뮤직과 민요, 창등 모든분야의 노래를 소화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준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일본 공연성공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한다. 그의 일본 공연이 일본매스컴과 가요계의 좋은 평가를 받자 현재 일본에서는 조용필붐이 일고있 다는 소식이다. 톱클라스 엔까(演歌) 가수 야시로 야끼(女)등 인기가수들이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등 조용필의 히트송을 다투어 취입하고 작년부터 시작된 현지의 「조용필 팬클럽」의 회원도 부쩍 늘고있다는 것. 또 지난해 9월 일본 대 레코드회사인 CBS소니의 라이선 스 음반으로 나온 「미워 미워 미워」등 조용필의 일본어 디스크도 하루 2천여장씩이나 팔리고 있다. 지난 4년동안 국내에서 부동의 인기 정상을 지켜오는 그는 타고난 재능에 가성과 탁성의 독특한 목소리까지 개발, 혼신의 정열로 팬들을 사로 잡고 있다. 고교때 집안의 반대를 부릅쓰고 가출, 가수로 나섰던 그는 대마초사건때는 3년동안 무대를 잃기도 했으나 좌절하지않고 피와 땀으로 가수에의 수업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그를 낳게 한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모양, 헐렁한 옷차림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가꾸어온 그는 인기만을 위해서 잔재주 나 기교를 부렸다면 오늘의 자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오로지 노래만을 위해서 생명을 다 하는 자세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오늘의 조용필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선풍적인 일본 공연을 출발로 조심스럽게 해외무대를 노크하면서 국제적인 쇼흥행사인 일본의 프러모터 주선으로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두번째 일본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오 는 19일 하오 6시30분 서울하이야트호텔 리젠시홀에서 5번째 앨범인 「한강」「황진이」「나는 너 좋아」등의 신곡발표 디너쇼를 갖는다. 갈채속 하루 70곡 부르고, 팬클럽 입회원서 동나… 1983년 5월 週刊京鄕 슈퍼스타 조용필(33)의 열기가 일본에 까지 진동했다. 그는 동경 NHK 공개홀등 일본의 3개도시 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는데 운집한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성공적으로 끝난 조용필의 일본 상륙 공연의 현장을 소개한다. -------------------------------------------------------------------------------- ● 끝없는 박수 물결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 공개홀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는 1회에 무려 4천여명의 관객이 운집, NHK 사업단이 콘서트를 시작한후 최고의 인파를 기록했다. NHK의 공개홀은 서울의 세종회관 대강당 규모의 크기에 최신식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춘 콘서트 전용홀. 과거 미국의 유명가수 한두명이 공연한 일이 있을 뿐 동양권 가수로는 趙가 처음이었 다. 趙의 공연은 이국인에대한 콧대높은 일본인들의 자존심 때문인지 처음과 끝이 너무나 다른 상황 을 빚어냈다. 오프닝곡으로부터 3∼4곡이 이어지는 순간까지도 관중들의 반응은 차라리 냉담한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돌연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곡이 끝날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가 바로 그 반응의 시초였다. 2시간의 공연동안 후반 20분은 가히 열광의 도가니를 방불케했다. 또하나 처음과 끝의 느낌이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趙의 레코드, 사진판매와 팬클럽의 입회원서였다. 한산하기만 하던 레코드가게앞에는 공연이 끝나자 장사진을 이루었다. 趙의 팬클럽들이 문앞에 서 나누어주던 입회원서가 공연이 끝나면서 갑자기 동이나는 모습도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느낌 을 주는것중의 하나다. 26곡의 곡이 모두 끝나고 다시 3곡의 앙코르가 나간후에도 관중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려하지 않 았다. 공연이 끝났으니 나가달라는 수차의 아나운서 멘트가 울려퍼진후에야 겨우 자리를 뜰 정 도였다. 조의 공연이 있었던 동경·고오베·후꾸오까가 모두 마찬가지 였다. ● 초인적인 스태미너 교포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이들의 대부분이 일본인들이라는 점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 었다. 趙는 고통을 이겨내는데도 확실히 슈퍼스타급이었다. 하루 2회 공연이면 모두 69곡정도를 불러 야 되는데 그는 그많은 노래를 한곡도 흐트러짐이 없이 2시간씩을 혼자서 버티어 내곤 했다. 특히 첫 공연때는 거듭된 리허설로 목이 퉁퉁 부은 상태였는데도 한치의 허도 보이지 않음은 오 히려 이상할 정도 였다. 趙의 공연을 지원하는 사람은 모두 20여명에 달했는데 NHK 직원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趙의 뒤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어 국경을 초월한 예술의 세계를 실감나게 했다. 프로 세계권투 챔피언 고바야시와 일본의 유명한 엥까가수 다니무라 신찌가 찾아와 趙를 위로하 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조용필 NHK 공연을 보고 <양인자> 일본 순회공연 첫무대는 성공했다. 최대역량 발휘못한 아쉬움은 남아 1983-05-25 중앙일보 일본 NHK 초청 조용필 콘서트가 22일 오후 2시와 7시, 두차례 걸쳐 NHK 홀에서 열려 6천여명의 청중이 몰리는 성황을 이루었다. 방송작가 양인자씨가 본 조용필콘서트 참관기를 다음에 싣는다 (편집자 注) 박수속에서 시작되어 박수속에서 막을내린 NHK 홀 조용필콘서트는 한국가요의 일본상륙에 일단 은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것같다. 결코 만만치않은 금액의 입장권이 예매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당일에는 웃돈까지 붙는 사태가 일어났다. NHK 사업단이 벌인 가요행사로는 최초의 대성공이라니까 우선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구경꾼이 있어야 굿이되듯 역시 청중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대중예술이고 보 면, 4천석의 홀을 꽉메운 청중앞이라면 신명나는 굿을 한판 벌일만도 한것이었다. 음악은 듣고 느끼는 것이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므로 가깝고도 먼 일본의 청중도 이 시 간만은 같은 공감대로 묶여질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허전한 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0대들의 아우성속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온데 익숙한 탓인지, 이 곳의 점잖은(?)관객이 아무리 힘찬 박수를 보내도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차는 느낌이었다. 이곳 10대들도 그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가수에 대해서는 우리의 10대들보다 더한 아우성을 보인 다고 하는데, 조용필의 경우 공연을 앞두고 한번의 TV 출연에 두곡의 노래를 부른 것이 전부라 니, 동경의 10대들에게 환호받기에는 그의 소개가 부족했고, 따라서 그의 노래가 아직은 낯설었 던 것 같다. 일본가수의 히트곡인 「히샤메와 쯔가루」를 부르자, 비로소 객석에서 작은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억압된 감정을 작은 폭탄처럼 내뿜고, 때로는 가냘픈 풀잎처럼 떨면서 다이내믹한 몸짓으로 노 래하는 조용필. 그는 트로트에서 민요 팝까지 자신의 히트곡을 우리말로 불러 청중을 휘어잡았 다. 남의 나라 무대였지만 조금도 망설임없는 그의 야무진 열창은 2시 동안 청중과의 거리를 바짝 좁히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누군가 일본말로 『끝내준다』고 외쳐댔다. 흥행뿐 아니라 공연성과도 컷음을 피부로 느꼈다. 다만 국내에서 처럼 그의 최대역량을 일본 청중앞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것 은 아마도 너무도 꽉짜인 스케줄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 인 것 같다. 음악에의 열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체력안배의 적정한 조절이 필요함을 이번 공 연을 통해 느꼈다. 무엇 때문에 이 작은 한남자를 향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스타라면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최대의 기량으로 청중에게 보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조용필의 일본 순회공연 첫무대는 한국 가수의 해외진출 가능성과,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대일본수출에 한 몫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조용필과의 '차 한잔 대화' '혼을 부르는 천의 목소리'    NHK 공연도 그렇거니와 조용필은 이미 NHK 공연전에 '발렌타인 라이브 하우스'에서의 공연에 서 진가를 발휘했다. '필기획' 'NHK 프로모터 서비스' 'CBS 소니' '비닝 프로덕션'이 초청자가 되어 120명을 추청, 리셉션을 겸했다. 방송관계자, 가요인, 기자 등이 모인 이날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미워 미워 미워'등을 1절은 한국말, 2절은 일본말로 불렀는데 듣는 이들은 한결같이 놀라움을 나타냈 다. 그는 지난 4월 아까사까 고뀨에서 묵다가 5월 1일 부터는 동경시내의 한 호텔의 6층 전체를 세 를 내서 묵고 있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을 통해 '동양의 훌리오' '혼을 부르는 천의목소리' '올 라운드 플레이어'등 의 별칭을 얻으며 국제 가수로서 이미지를 뚜렸이 새겼다. 조용필과의 '차 한잔' 매니저, 무대감독등 14명과 함께 일본으로 최근 제과 CF로서는 처음으로 롯데제과 CM송을 부른 조용필은 모델료로서 신기록을 세웠다. 김 도향 작곡의 CM송을 부르고 4편의 CF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소문으로는 5~6천만원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액수야 어떻든 여태까지의 연예인 CF 중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지난 3월 23일부터 한 열흘간 주욱 지구레코드사에서 신곡 취입을 해왔지요. 새로 도입된 24채 널 콘설 개통과 함께 첫 번 레코드 취입이었어요." 그의 말 뿐만 아니라, 위대한 탄생도 5인조에서 7인조로 바뀌었는가 하면 키보드를 이호준이 맡 았다. 이로서 건반연주자 4명,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다. 4월 18일 그는 대부대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매니저 유재학, 위대한 탄생, 무대감독 등 14명 이나 되었다. 동연일자는 5월 22일 'NHK 홀' 인데 알찍 간 것은 콘서트 PR과 현지 방송출연 등의 스케쥴에 의 한 것이다. 그는 5월말에 돌아올 예정이다. 조용필이 쓰는 「청춘역마차」 나는 자연과 하나되어 차라리 바람이 되고파… 5월의 일본공연이 끝나면 6월 하순경부터는 미주(美洲)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그사이에 또 제5 집 디스크출반을 마무리 지어야 할걸 생각하니 마음부터 바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지않던가? 나도 짬 좀 내야겠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이 렇게 좇기기만해서야 어디 좋은 일을 할수 있겠나. 짬 좀 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낚시다. 지금까지 나는 낚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대마 초사건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지내는 동안 수십차례 낙시터엘 갔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의 관심 은 다른데 있었다. 소주를 마시는 기분이 낚시터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수풀과 수면에 씻길대로 씻겨해맑은 바람 을 안주삼아 종이컵에 담긴 말간 술을 마시노라면 도심에 찌든 폐부마저 말갛에 정화(淨化)가 되는 듯했다. 그 뿐인가. 취기가 올라 향긋한 냄새의 풀들을 깔고누어 휘파람을 분다거나 한곡 조 노래를 뽑을라치면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의 취흥이 나와 다를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낚시터에가서 술을 안마시는 사람을 보면 솔직이 말해서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그 당시 그런사람들이 바보라는 증거는 내게만은 확실했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그 바쁜시간을 뭉턱잘라내어 태평스럽게 인적없는 물가에 앉아서 버티 기로 작정했다는 것부터가 공부시간에 엉뚱한핑게로 조퇴를 해서는 쓰잘데 없이 거리를 헤매는 학생처럼보였다는 것도 그 한가지다. 그리고 잡아 올리는 고기를 보면 두말할것도 없이 산수시간에 빵점을 맞아도 모자랄 반경제(反 經濟)행위를 감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어부(漁夫)들의 직업적이 도구보다 훨씬 비싼 낚시대며, 가방이며 갖가지 장구들을 장만해가지 고 가서 그들이 잡아 올리고 있는 고기들이란 무엇인가? 비늘과 가시를 빼고나면 먹을것도 없는 붕어. 30㎝가 넘으면 『월척을 했다』고 무슨 복권이나 당첨된것처럼 깡충깡충 뛰기까지하며 기고만장하지만 그것 실용가치로 따져 어디 굴비 한 마리 만 할까? 그리고 그들의 편견또한 무지스러운 지경에 까지 이르러 있는듯 보였다. 담배 한가치 길이만큼 하더라도 붕어만이 「진짜 고기」라는 것이다. 비슷하게 생겼음에도 커다란 잉어는 잡어(雜魚) 로 쳐서 백안시 하고 영양가 높은 뱀장어가 물려 올라오면 아예『재수 없다!』고 저주에 가까운 욕설마저 퍼붓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비싼 돈, 바쁜 시간 낭비하며 별로 요긴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그 딴고기를 잡겠다고 꼼짝없 이 물구덩이에 퍼질고 앉은 그들을 바보라고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그말을 할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 그들 마음속에 숨은 아주 매력적인 비밀을 그 당시 내가 발견하지 못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들은 조그만 붕어마저도 잡지 못하면서 하루를 허탕치기도 했지만 불평하지는 않았다. 나는 보이는 것만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데 비해 나를 낚시터로 인도 했던 친구들은 물속 깊 숙이 마음으로밖에 읽을수 없는 지경에다가 마음을 담가 씻어내고 잇었으며 물밑바닥을 노리는 갖가지 조그만 고기와 생명체들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나는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미미한 찌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들 낚시꾼들은 그 메시지가 피라미의 것인지 새우나 아니면 수면을 스쳐가는 바람의 소행인지를 바로 분별해내는 지혜를 즐기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들은 그 순간만은자연과 일체가 되어 차라리 그들은 물이 었으며 바람이고, 또 물고기 같기도 했다. 그들은 참으로 자유로 왔다. 그 자유를 위해 쓰는 도구의 값이나 시간이 아깝다고밖에 산술을 하지 못했던 나야말로 이제 생각하면 바보스럽다. 작년에 미인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이「돌핀」(돌고래)이란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를 시킨 기억 이난다. 그 노래의 효과음 가운데는 돌고래의 수중음이 삽입되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 지만 우리는 물속이라서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우리의 마음의 눈을 감아버린다면 세상은 너 무 갑갑하고 좁아질것이 뻔하다. 내게 휴식시간이 며칠이라도 있다면 나는 아주 값진 도구들을 장만해서 어디 파로호쯤이라도 찾 아가서 자연과 나를 좀 동화시켜 볼 때를 가지고 싶다. 조용필이 쓰는 「청춘 역마차」 미국에선 「브레이크 댄스」등장 『노래와 춤은 사촌』이라는데… 「노래와 춤은 이웃사촌」이라는데 나는 춤을 출줄 모른다. 그래서 춤잘추는 사람들에게 부러움 을 감추지 못하는 마당에 요즘 미국에서는 「브레이크 댄스」라는 파격적인 춤이 등장해서 나를 더욱 무력하게한다. 스테이지에 섰을 때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의 모든 것이 목소리와 음향에의해 객석에서 전 달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관중의 입장이 되고 보면 나의 희망과 다른 기대를 가질수도 있다. 목소리 뿐만아니라 리드미컬한 제스처나 무용으로 그들의 눈길을 즐겁게 해달라는 주문도 뜻밖 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렇질 못하다. 가급적이면 동작을 작게하고 노래부르기에 전력을 쏟는다. 그것이 나의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무대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 매력적인 몸놀림이 따르면 노래가 산만해 진다거나 가 수의이미지에 손상을 준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작고한 김완율선생의 그것처럼 완벽한 동작은 못펴더라도 뭔가 관객이나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 줄 재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 또한 곧잘느낀다. 그런데 딱하게도 내게는 그런 솜씨가 낯설기만 하니 조용히 서서 노래에다 정성을 쏟을밖에 달리 어쩌랴. 시장한사람이 저도모르게 음식점을 기웃거리듯이 나도 춤솜씨좋은 사람들한테 곧잘 눈길을 빼앗 긴다. 정장을 하고 감상을 해야하는 클래식발레에는 도무지 친숙감을 못느끼지만 리듬에 따라 감흥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곧잘 마음속으로부터 강채를 보내곤 한다. TV 쇼출연을 앞두고 땀을 흘리며 리허설을하는 방송국의 무용수들의 연습장에서도 그렇고, 외국 영화에 나오는 무용신들도 내가 눈여겨보는 장면들이다. 더구나 기록영화나 극영화중에서 때때 로 펼쳐지는 아프리카오지의 원주민들이 보여주는 원색의 춤에는 나는 완전히 사로잡힌다. 그들 의 몸에 밴춤솜씨는 정교하지 못할망정 순박한 건강함이 그대로나타나서 정말보는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남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나마 자주 춤추지는 못하지만 내가 출줄아는 유일한 춤은 디스코라는 거다. 이런주장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대부분 "그걸 누가 못해?"하겠지만 그래도 할수 없다. 디 스코는 컨테스트에 나가기 전에는 누구나 자기마음 편하게 몸을 풀어주는 동작만 게속하면 되기 때문에 나도 남들과 비슷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즐긴다. 그런데 지난연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한국 전위예술가 백남준씨연출에 국제적 TV프로그 램을 보고 나는 또한번 무릎을 쳤다. 머스 커닝험할아버지 뿐만아니라 저위 무용가들이 보여준 춤은 내가 생각하던 그렇게 틀에 꽉끼인 동작의 연속이 아니었다. 참으로 마음편한 무용으로 보면서 "나도 지도를 받으면 전위무용은 어쩌면 해낼수도 있을지 모 르겠구나" 하는 망상에 잠시 젖어볼 정도였다. 물론 전위무용에 정신을 곧 터득할수 있다는 것 이아니라 그 중 편한 동작 몇소절 분을 떼어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망상마저도 포기했다. 최근에 들은바로는 미국에서는 '브레이크 댄스'란 것이 도도히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댄스'는 '브레시 댄스'라는 영화에서 한바탕 싸 우듯이 펼쳐보였던 바로 그런 춤이다. 이 신종 댄스는 지금까지 유행했던 갖가지와는 달리 격렬한 리듬의 음악에 맞춰 곡예, 발레, 군 인들의 제식훈련의 동작뿐만아니라 무언극의 표현까지 합친 파격적인 스타일. '리듬앤 블루 스'나 포크뮤직에 맞춰 춤꾼들은 체조 선수들의 묘기인 공중돌기, 덤블링, 한순짚고 회전하기,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서기, 물구나무서기등 춤으로서는 파격적인 동작을 리듬에 따라 엮거 가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항목중에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 브레이크 댄스가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져간다면 내가할 역할은 멀거니 앉아서 구경이나 할 뿐이다. 조용필이 쓰는 청춘 역마차 칠흑같은 여름밤의 허깨비 난데없는 여인의 넋두리가... 나는 겁이 많은 남자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귀신 때문에 때때로 오금이 저리기도 한다. 그런 내가 낚시터에서 들은 귀신얘기 때문에 밤낚시를 단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납량(納凉)이란 말은 『여름에 더위를 피하며 서늘한 바람을 쐬는것』이 그 뜻이다. 그런데 연예가에도 여름이 되면 이 납량이란 말이 많이 쓰여진다. 극장 문전에 「납량 공포극」의 간판이 내걸리고 라디오 나 TV도 납량 특집 쇼와 드라머를 꾸민다. 나는 겁이 좀 많은 편에 속하는 남자다. 어둠속에서 낯선길을 혼자 걷게되면 사람보다 귀신이 더 무서운 생각이 들곤한다. 아직까지 한번도 귀신을 만나거나 경험에 본일이 없지만 나무나 바 위나 이상한 바람소리, 또 야행성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들으며 그것들이 귀신같아서 모골이 송 연했던 일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전 한가하던 시절 친구들과 밤낚시를 나서게돼도 나는 고기가 잘물리는 외딴곳 보다는 좁더라 도 친구들 사이에 끼어앉아 공포심이 없이 지새길 더 좋아했다. 나의 이런 공포심 때문에 고기 잡는 재미를 포기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은 곧잘 귀신얘기를 해서 나의 간담을 졸여 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으시시했던 얘기로는 이런 것이 생각난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수몰지구가 된 어느 댐으로 밤낚시를 갔더란다. 낚싯대를 편 곳은 동 행과 좀 떨어진 언덕 모퉁이. 저수지 건너 아득한 곳에서 랜턴 2∼3개가 조는 듯이 가물거릴뿐 주위는 마치 먹물통 속처럼 깜깜하고 인적이 없었다. 괴괴한 한밤의 정적속에서 당연히 긴장감을 느끼고 있던때에 문득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 렸다. 처음은 바람소리거나, 아니면 워낙 인가에서 몇십리나 떨어진 곳이라 산짐승이 짝을 찾는 흥얼거림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섞어 나직하나마 정답게 아이를 달래는 여인의 목소 리도 섞였다. 『아야 아야 울지마라 니가 울면 내가슴에 눈물 흘러 강이되고.......』 나직하지만 그런뜻의 자장가같은 소리였다. 섬뜩한 기분에 친구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 다. 실눈썹처럼 걸린 초승달빛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새하얀 빛의 소복을 한 여자가 치마꼬리 를 나풀거리며 서있었다. 밤중이라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앉았던 자리로부터의 거리는 20여 미터. 그여자는 붉은 빛이 도는 띠로 아이를 묶어 업고 서서 추적거리며 달래는 참인듯했다. 머리칼이 쭈볏섰다. 정 말 해괴한 일. 인적이 없는 캄캄한 밤의 외진 호수가에 아기를 업은여자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 을까? 『거, 누구요?』 친구는 사시나무 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거, 누구요?』 상대방의 대답대신 자기의 목소리가 부서진채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쯤되면 필경 그녀도 소리를 들었을텐데 반응이 없이 아기만 추스리고 서있었다. 『누구냐니까요?』 간신히 또한번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친구는 참을수 없는 두려움에 낚싯대를 팽개치고 흠뻑 땀에 젖어 텐트로 돌아와 기절하다시피 드러누워 버렸다. 이튿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나 어젯밤의 현장으로 나가보았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로 시뻘건 황 토흙 등성이가 여기저기 널렸을뿐 어디도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웬지 기분이 매슥거리고 두통이 이는 것 같았다. 함께온 친구들을 설득하여 돌아가기로 하 고 배편을 불렀다. 사공은 60대의 할아버지. 친구는 사공에게 간밤의 일을 얘기했다. 『또 그걸보셨구먼. 거기는 수몰되기전 애무덤이라오. 그런데 딸을 연달아 셋이나 낳고, 네 번 째 가까스로 얻은 아들이 홍역으로 죽어서 거기에 묻었다지요. 그래서 집안으로부터 박복한 여 자라고 소박을 맞은 아이엄마는 애무덤앞에서 며칠을 울다가 기절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가 있어요』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나옴직한 원혼의 얘기를 늙은 사공은 들려 줬다. 그친구는 그 일이 있은뒤로 며칠을 앓았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날이후로 거의 밤낚시를 가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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