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6/8][高大 록이벤트의 밤] "젊음의 반란" '97자유콘서트

게시판 상세보기
작성일 2004-06-14 15:01:32 조회수 4032
[高大 록이벤트의 밤] "젊음의 반란" '97자유콘서트 1997-06-08 조선일보 터져나오는 열정으로 보낸 나흘 밤이었다. 수만 관중과 40여 출연 팀은 '자유와 젊음'이라는 공 통 코드로 하나가 됐다. 무대와 객석 구 분은 무의미했다. 함께 노래하고 환호하며 그들만의 세 상을 만끽했다. 한국 대중음악 사상최대 록이벤트 '97자유' 콘서트가 4, 5일과 7, 8일 저녁마다 고려대 노천극 장에서 펼쳐졌다. 언더그라운드 무명 클 럽밴드에서 조용필까지, 한국 록가수 42팀이 돌아가며 참여한 공연엔 연일1만명 넘는 관중이 몰렸다. 관객들은 개막 1∼2시간전부터 1㎞씩 행렬을 이뤘다. 대학생을 주축으로 20∼30대 직장인과 고 등학생이 가세했다. 쌍쌍이 어깨를 감싸 안은 연인들부터 아기를 들쳐안은 젊은 부부까지 다양 했다. 음악에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나흘 공연은 신명나는 놀이판이었다. 마지막 날인 8일 밤, '대중 음악 영웅' 조용필은 전성기에 어린아이들이었던 세대에게 신화를 현 실로 재현해보였다. 아침부터 궂은 날씨였다. 그러나 관 중들은 아랑 곳하지 않았다. 조용필은 귀에 익은 히트곡에 '바람의 노래' '판도라의 상자' 같 은 새 노래들을 섞어 객석을 휘어잡았다. 젊은 관중들은 목이 쉬어라 환호하며 두팔을 허공에 던졌다. 밤은 깊고 3시간여 축 제는 끝났다. 무대에 불은 꺼졌다. 하지만 관객들은 여운에 취한듯 아쉬워 했다. 열띤 풍경은 첫날, 4일 공연부터 이어졌다. 리아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열창하며 "족쇄를 풀 고 마음껏 소리치라"고 외쳤다. 객석은 떠나갈듯 화답했다. 윤도현밴드 조동진 안치환으로 이어 진 열기는 넥스트에서 절정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박 차고 일어나 몸을 흔들어댔다. 공연이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은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발을 굴러댔다. 신철민(건국대2년)군은 "무슨 노랜지 몰라도 그냥 신난다"고 했다. 이틀째인 5일, 록밴드 시나 위 때는 흥 분한 관객이 무대에 뛰어올랐다. 시나위는 이들을 뿌리치지 않았다. 한데 어울려 머 리를 뒤흔들며춤췄다. 젊음의 기준은 물리적 나이에 있지 않았다. 사흘째인 7일 마지막 순서는 70년대 간 판 록그룹 산울림이 장식했다. 가죽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산울림은 강렬하고 거침없는 기타, 드럼으로 신 세대를 사로 잡았다. 무대와 객석에 가로놓인 20년 세월의 간격은 느껴지지 않았 다. 황영신(성 신여대 1년)양은 "자유라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며 발을 굴렀다. 해프닝도 많았다. 록그룹-가수들은 객석에 물을 뿌려 관중들을 도발했다. 몇몇 언더그라운드 펑크 밴드는 객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거친 제스처도 서슴지 않았다. 영어나 우리말 욕설을 외치 기도 했다. 정일식(연세대 1년)군은 "외국 펑크밴드 콘서트에선 흔한 일이다. 재미있지 않느냐"고 했고, 김 기선(32·회사원)씨는 "지나치다. 펑크 밴드들은 꼭 욕을 해야 맛이 나느냐"고 눈살을 찌푸렸 다. 그래도 밤 10시 넘겨 안암동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개운하게 개 있었다.

댓글0

이전 다음 글보기
이전글 [동아일보 1997/6/6] 조용필 「바람의 노래」10대 바람 솔솔
다음글 [1997/6/18] 음반시장 40~50대 반란 슈퍼스타 조용필.폴 매카트니 신곡 히트 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