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예술의전당 2002/12/1] 조용필 콘서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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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7-01 23:11:33 조회수 1906
Premiere_ 조용필 콘서트 2002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태양의 눈으로 21세기 디지털 아티스트 조용필 조용필은 가수다. 노랫말도 쓰고, 작곡도 하는 싱어 송 라이터다. 지난 세기까지 그는 가인(歌人)으로 일세를 풍미했고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반짝이는 별이었고 만인에게 친근한 가객(歌客)이었다. 21세기에 만난 조용필은 가수, 그 이상이었다. 그는 공연기획자이자 연출가였고, 뮤직 퍼포먼스를 주도하는 쇼 비지니스맨이었다. 하나의 공연을 위해 쉴새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그것을 무대 위에 형상화하기 위해 골몰하는 아티스트였다.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보여주고, 느끼고, 즐기게 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종합예술가로 변신한 것이다. ‘보여주는 노래’를 위해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섭렵했고, 라스 베이거스의 매직쇼를 연구했다. 한편으로는 무대 메커니즘을 익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대 위에 펼칠 드라마를 구상한다. 자신의 음악을 최대한 표출시키기 위해 엔지니어가 되기도 하고 음향감독, 조명감독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의상과 소품까지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장인(匠人)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조용필은 아날로그 가수에서 디지털 아티스트로 진화돼 있었다. 무대에서 큐시트에 따라 노래만 하는 수동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더 즐겁고 감명깊게 전달하느냐에 집중하는 엔터테이너로 거듭난 것이다. 조용필의 이같은 변신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무대, 좋은 공연을 해왔다고 해도 똑같은 무대, 똑같은 공연의 반복은 식상하게 마련이다. 할 때마다 전과는 어딘가 다른, 새로움의 추구야말로 조용필 예술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대중음악을 공연의 경지로 끌어올린 조용필의 의욕은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인기에 초연하고 상업주의와 과감히 결별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시도는 포장만 달리한 또 다른 상업주의에 불과하다. 조용필은 TV의 유혹에서 일찍이 벗어났고 인기를 매개로 한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끌려다니면 잠시 허명은 얻을지언정 생명이 길지 못하고 구속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자유인이기를 원한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욕심이나 소유는 금물이다. 모든 걸 버릴 때 빈 공간이 생긴다. 조용필은 그 공간에 뭔가 새로운 것, 뭔가 창조적인 것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지적(知的) 호기심을 발동한다. 시를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최첨단의 현대음악을 들으며 영감(靈感)을 길어내 곳간에 채운다. 조용필이 수십년간 우리 곁에 있는 것은 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며 경쟁의 무기는 창의력임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특히 아티스트들의 상상력과 창조의 힘이 없다면 세상은 활기를 잃고 국제경쟁에서도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친구 조용필은 우리 발길 머무는 곳에 사랑의 씨앗을 뿌렸고 꽃을 피웠다. 우리가 지칠 때 동심으로 안내했고 우리가 힘들 때 가슴을 다독이는 노래로 만인을 위로했다. 일찍이 그는 저항의 노래를 불렀으며 부조리한 세태를 비판하면서도 미래의 희망을 얘기했다. 이제 21세기 조용필은 ‘태양의 눈’으로 우리 앞에 선다. 굳이 21세기란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조용필,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하자는 의미에서다. 우선, 노래만으로도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가 혼신을 다해 뮤지컬 형식을 택한 의도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팬들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귀로 듣는 노래가 아니라 눈으로 보여주며 팬들과 자신의 음악세계를 입체적으로 교감하고 싶다는 열정인 것이다. 또 하나, 그는 공연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감각과 리듬만의 음악이 아니라 노랫말 속에 녹아있는 우리 시대의 애환을 드라마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겪었던 세상의 명암을 함께 느끼고 커뮤니케이션하자는 속뜻이 담긴 것이다. 그가 노래해 온 30여 년의 세월 속에서는 암울했던 독재의 그늘과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부조리의 잔재들이 찍혀있다. 그때의 노래들을 통해 지난 시절을 반추하면서 맺힌 응어리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조용필에게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창작의 연속이다. 하지만 일단 완성된 무대에 서면 그는 신들린 무당이 된다. 노래하는 가수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관객의 영혼을 흔드는 음악의 마술사이자 관객의 내면을 파고드는 심령술사가 된다. 추억이 배어있는 옛 노래에 팬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시대를 리드했던 다양한 장르 음악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조용필만큼 팬층이 넓은 가수도 드물 것이다. 중년의 ‘오빠부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새싹이 돋듯 10∼20대 층에 새로운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조용필의 노래가 시대나 계층을 초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조용필만큼 팬들의 기호를 꿰뚫는 가수는 흔치 않다.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흡인력과 진솔한 정서가 조용필 음악에 배어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가수 조용필은 이제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다. 무대에 서면 여전히 동안(童顔)이지만 세월이 드리운 옅은 그늘은 어쩔 수 없다. 대신 그에게선 농익은 체취와 원숙미가 풍긴다. 저음은 한층 무게가 있고 예전보다 더 높아진 고음에선 윤기가 묻어난다. 천에 비하면 실크요, 술에 비하면 코냑의 깊은 맛과 같은 절정기를 맞은 것이다. 우리가 조용필을 아낀다면, 그리고 그의 노래를 진정으로 음미하려 한다면 조용필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진솔한 내면을 읽어야 한다. 그것을 ‘절대 고독’이라고 한다면 수긍하지 않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이 조용필의 음악이 터져나오기 까지는 창작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절대고독이 그의 가슴을 멍들게 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영원한 친구 조용필은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음악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가 일찍이 예언한대로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우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2002년의 끝자락에서 조용필과 함께 한 당신은 아름답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태양의 눈을 따려는 위대한 비상을 보며 화려한 꿈을 꾸고 있나니.... 글 : 정중헌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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