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조용필
작성일 | 2023-05-17 06:59:17 | 조회수 | 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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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처음 조용필을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경 TBC TV의 "가요베스트7"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사회가 이상해였나 그랬고,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1위였나 아무튼 그랬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음.;;;) 당시 우리 부모님도 동네 어른들과 술 한잔 하시고 이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10살 남짓 된 나로선 아직 그의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심한 뇌성마비 장애로 늘 집안에서 어린이 잡지나 읽던 나애게도 어느덧 사춘기가 찾아오자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엄마를 심하게 졸라 반지 계 탄 돈으로 카세트를 사달라 해서 만화영화 주제가들을 녹음해 듣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팔베개에 기대 라디오를 듣는데, 조용필이 판소리를 통해 얻었다는 거친 탁성과 박력넘치는 편곡이 어우러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얼마 후 어느 토요일 저녁, 물리치료사가 집에 와서 온몸을 운동시켜주는 가운데 내 눈과 귀는 MBC TV를 통햬 컴백 쇼를 펼치는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에 집중돼 있었다. 사실 그때까진 내가 가요를 듣는다는 게 웬지 어색했고 약간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1981년 여름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조용필 비치페스티벌" 실황을 KBS TV의 녹화중계로 보면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티비를 같이 보던 가족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해놓고 1시간 넘게 녹음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의 음악은 최신곡 옛곡 할 것 없이 녹음해서 데뷔 시절 미성으로 부른 '님이여'나 '고운 님 내 님' 같은 노래도 좋아하게 됐다. 이뿐 아니라 뒤늦게 1집과 2집 엘범을 엄마한테 사달라 했고, 3집부터는 나오자마자 사서 들었다. 그렇게 조용필 음악을 즐겨듣기 시작하자 당시 80세가 넘도록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잊혀진 사랑"에서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라든지 "고추잠자리"에서 '엄마야~'라든지 다른 여러곡의 가사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깊게 들으셨다. 엄마도 처음엔 "미워 미워 미워"를 무척 좋아하시다가 나중에는 "허공"을 십팔번으로 부르셨다. 기타리스트였던 우리 형도 내가 듣던 그의 음악 중에서 몇 곡은 기타 리프나 애드립 부분을 따서 연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의 음악과 노래와 가사가 '고독의 화신(동생이 군에서 편지하며 날 이렇게 표현함)'이었던 나에게 크나큰 위로와 힘이 되어준 것이다. 이렇게 조용필 음악을 열렬히 좋아했지만, 솔직히 7집 이후론 약간 멀어지게 되고 아주 강한 하드락이나 주로 잔잔한 뉴에이지 같은 다른 음악들에도 심취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언젠가 아직 같이 살던 동생이 여러 음악을 듣다가 13집 엘범을 사와서 "꿈"을 트는데, '와~ 이건 뭐 그냥 조용필 음악의 끝판왕'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더욱 좋아하게 됐다. 지금까지 발표한 그의 여러 가지 다양한 음악들 중에 특별히 더 즐겨듣는 곡들이 따로 있는데... 좀 강한 락적인 음악(미지의 세계, 나는 너 좋아, 여행을 떠나요 등), 국악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자존심, 황진이, 간양록 등), 심오한 프로그레시브 느낌의 음악(여와 남, 한강, 생명 등}이 그렇다. 물론 그 외에도 좀 차분한 음악들과 신보 20집의 "필링 오브 유" 같은 경쾌한 곡들까지 다 좋다. 그 가운데 5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나에게 유난히 가슴 깊이 와닿는 곡이 있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손내밀면 닿을 듯한 추억이 그림자 되어 지친 내 마음 위로해주고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으로 세월을 느끼고 다시 고독이 찾아와도 그 또한 내 삶인데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남겨진 내 삶인데 가야할 내 길인데 그것이 내 삶인데 .... 진정 조용필의 음악은 나의 청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하며 위로와 환희와 설레임을 선사해주고 있는 삶의 원동력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과거로 돌이켜보면, 그때가 19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인지 장소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일로 교회 동생들과 조용필 무료 공연장 근처까지 갔다가 보자는 소리도 못하고 그냥 왔다. 요즘처럼 전동휠체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혼자서라도 가서 보고 왔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쉽다. 그 이후로 조용필 콘서트 직관은 나의 큰 소원이 됐고, 2005년 평양공연을 SBS TV 실황중계로 엄마와 같이 감명깊게 보고나서 더 간절해져 엄마랑 우리 3형제 다 같이 보러가리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돌아가시고, 그 꿈은 아직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이제 2023년 5월... 간절한 그 꿈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의 도움으로 대구에 가서 이룰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귀가 부실 만큼 황홀한 연주와 노래 속에 목놓아 먀음놓아 떼창을 함께 부르리라. 2023년 5월 17일 부산 영도에서 윤영철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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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그토록 간절하게 소망해 오던 꿈을 대구에서 이루시게 되겠네요..
이제 4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얼마나 설레실지 제 가슴이 다 콩닥거리네요..
그날 매순간 매장면 오빠의 목소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윤영철님 가슴에 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