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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가왕 조용필, ‘친구여’에 울고 ‘위탄 케미’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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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1-12 16:19:25 조회수 163

[고승희의 리와인드]


지난 9~11일까지 KSPO돔 전석 매진
3만여 명 운집·KBS 공연 후 관객 확장
故 안성기 떠난 날 ‘친구여’ 열창해 울컥
韓 대중 공연 정점…첨단·아날로그 조화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지난 9~11일까지 서울 KSPO돔에서 열린 공연을 통해 3만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고승희 기자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지난 9~11일까지 서울 KSPO돔에서 열린 공연을 통해 3만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고승희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친구여’ 중)

백 마디 말이 무용했다. 꾹꾹 눌러 담은 짙은 그리움이 마디마디 실려 왔다. 관객들은 금세 직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 짙은 선글라스로 숨긴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60년 지기인 고(故) 안성기를 소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성악처럼 단단한 발성을 감정의 지렛대 삼아 뱉어낸 가왕을 향해, 객석 곳곳에선 “울지 마세요”라는 응원이 터져 나왔다.
 

가왕과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 베이스 이태윤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나선 이 무대는 이른바 ‘떼창 섹션’이다. ‘허공’, ‘추억 속의 재회’ 같은 발라드 명곡들에 관객의 목소리가 하나 되는 시간. 하지만 서울 공연 첫날의 ‘친구여’는 이전과는 달랐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고인의 발인일이었다.

올해로 데뷔 58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2025~26 투어가 11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9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구 체조경기장)에서 3일간 열린 이번 공연은 영하의 기온과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에서 1만여 관객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왕의 연말 투어는 늘 팬들로 북적였지만, 지난달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인천, 광주, 서울로 이어진 총 10회의 전국투어 콘서트는 유독 그 화력이 거셌다. 앞서 지난 10월 KBS 80주년 대기획으로 마련된 고척돔 무료 공연인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가 방송된 후, 전 국민의 ‘가왕 앓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로 데뷔 58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2025~26 투어가 11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올해로 데뷔 58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2025~26 투어가 11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실제로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기록하면서 지방 콘서트는 회차를 늘렸고, 서울 공연은 시야 제한석까지 모두 판매했다. 조용필은 무대 스크린 양옆의 ‘사각지대’에 자리한 관객들을 가리키며 “근데 거기는 안 보일 것 같다. 여기 보이냐”며 관객들의 시야를 살피기도 했다.

올해 콘서트의 ‘주목할 점’은 관객층의 확장이다. 최근 몇 년 새 20~30대 관객 비율이 확대되고,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은 40대 가족을 만나는 일도 많아졌다. 생애 첫 콘서트를 보러왔다는 60대 관객도 만날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김복림(69) 씨는 “TV에서 조용필의 콘서트를 보고 한 번 실제로 가보고 싶었다”며 “살면서 이런 큰 공연장에서 가수의 콘서트를 보는 것도 처음인데, 그게 어릴 적 좋아했던 조용필이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르 넘나 든 히트곡 열전…“매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조용필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세계’가 지구를 향해 교신을 시작했다. 위성 안테나가 분주히 주파수를 맞추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미지의 안면(顔面)이 정찰을 마치자 음악이 점화됐다. 첫 곡은 이른바 ‘도파민 촉진제’인 록 오페라 ‘태양의 눈’. 예전엔 공연 중반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쓰이던 이 곡을 오프닝으로 전진 배치, 객석을 단숨에 록 페스티벌의 한복판으로 변신시켰다.

가왕의 무대가 해마다 찾아온다고 하지만 사실 반복되는 루틴이 없다. 매번 새롭다. 58년의 아카이브에서 곡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고도의 큐레이션’으로 매년 관객을 놀라게 한다. 올해는 대중적 히트곡 사이로 골수팬들이 염원하던 희귀 곡들을 적절히 배합해 세트리스트의 밀도를 높였다.

오프닝 섹션의 파상공세는 흥미로웠다. ‘태양의 눈’을 필두로 ‘물망초’, ‘자존심’, ‘그대여’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록 오페라와 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과 신스팝을 넘나드는 구성은 조용필 음악 세계의 변천사를 압축한 ‘소우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판도라의 상자’ 무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판도라의 상자’ 무대


시원한 록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은 국가대표 밴드 위대한 탄생이다. 30년 넘게 가왕과 공명해 온 위대한 탄생은 매 공연 미세하게 디테일을 변주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록, 메탈, 신스팝, 트로트, 발라드로 다양한 장르가 이어질 때마다 달라지는 기타 연주와 사운드는 압권이다. 포효하는 ‘태양의 눈’, 어쿠스틱 선율에 재즈적 기교를 얹은 ‘친구여’, 하울링의 잔향이 울려 퍼지는 ‘추억 속의 재회’ 등의 기타 연주는 가왕의 곡 안에서도 독립된 예술로 존재했다.

최희선은 “이번 투어에선 기타의 딜레이(기타 연주 뒤 메아리처럼 이어져 리듬을 만들어주는 것) 효과에 특히 공을 들였다”며 “‘물방초’, ‘미지의 세계’에서 잔향을 이용해 리듬의 층위를 쌓으며 곡의 밀도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7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청량하고 단단한 가왕의 성음이 터져 나오자, 객석에선 경탄과 함성이 마를 새가 없었다.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소리는 나이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일찌감치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다.

조용필은 “매년 하다 보니, 다음에 또, 다음에 또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며 “여러분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저한테 ‘노래 언제까지 하실 거냐’고 물어본다”며 “그러곤 ‘90세까지 하셔야죠’라고 하는데 걱정이다. (그 때가 되면) 다들 못 올까봐”라며 ‘나이 개그’를 던졌다. 객석에선 웃음이 나왔지만, 그 말속에 오래도록 노래하고 싶은 가왕의 마음이 읽혔다.

가왕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
가왕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


가왕의 공연은 전 세계 팝스타, 밴드의 공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의 사운드를 자랑한다. 주경기장은 물론 고척돔, KSPO돔 등 전통 공연장이 아닌 체육관의 난반사를 억제하고 가왕 맞춤형 ‘소리의 성전’으로 만드는 것도 위대한탄생과 음향팀의 노고다.

최희선은 “서울 공연에서 특히 저음의 해상도에 집중했다”며 “저음의 파워을 유지하면서도 음정의 명료함을 잃지 않고 중간 지점을 찾기 위해 주력했다”고 귀띔했다.

‘위탄’ 케미와 가왕의 ‘장꾸미’…관계성의 미학

올해 서울 공연에선 웃음과 위로, 눈물이 공존했다. 놓쳐선 안 될 순간들‘이 많았고, 그러면서도 시시각각 관객들의 가슴이 젖어 드는 때도 있었다.

죽마고우의 별세 소식에 누구보다 빨리 빈소를 찾았지만, 가왕은 사흘간 이어진 공연에서 친구를 보낸 슬픔을 드러내진 않았다. 대신 관객들에게 “오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며 역설적으로 축복의 말을 더 많이 건넸다.

그의 진심은 하지만 노래에서 묻어났다. 한 줄 한 줄 읊조리는 ‘친구여’와 ‘고독한 러너’ 무대에선 가왕의 마음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고독한 러너’를 부르기에 앞서 “이 곡은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라며 “이 곡을 할 때는 잠시 쉬시며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달라”고 했다. 노랫말은 그제야 다시 들렸다. ‘서로 사랑한 친구가 있었네. 내가 사랑한 님도 있었네. 이제는 모두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라는 노랫말이었다. 가왕이 한 숨 쉬어갈 땐, 그의 또 다른 목소리인 최희선의 기타가 애절한 감정을 통곡하듯 토해내니 객석에선 숨죽인 눈물이 떨어졌다.

가왕 조용필의 2025~26 전국투어는 지난해 10월 KBS에서 방송된 광복 80주년 특집 ‘조용필, 이순간을 영원히’ 이후 관객층이 확장, 현장에 생애 처음으로 콘서트를 오는 60대 이상 관객은 물론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3040 부부들도 상당수 자리했다.
가왕 조용필의 2025~26 전국투어는 지난해 10월 KBS에서 방송된 광복 80주년 특집 ‘조용필, 이순간을 영원히’ 이후 관객층이 확장, 현장에 생애 처음으로 콘서트를 오는 60대 이상 관객은 물론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3040 부부들도 상당수 자리했다.


잊지 못할 명장면도 이번 서울 공연에서 만들어졌다. 무대 위 위대한탄생 멤버들의 ‘케미(스트리)’가 빛났다. 오프닝 때 ‘자존심’ 무대에선 좌청룡 우백호처럼 가왕을 호위하는 기타 최희선과 베이스 이태윤이 왼쪽과 오른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연주하고, ‘판도라의 상자’에선 이태윤이 반대편에 선 최희선의 옆자리까지 찾아와 듀오 연주를 선보였다. 관객의 환호성이 특히나 컸던 장면도 ‘그대여’에서 가왕과 최희선, 이태윤이 합세해 연주를 선보일 때다. ‘관계성의 힘’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리더 최희선과 건반 최태완의 시선이 내내 조용필을 향하는 것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최희선은 “특정 곡은 마지막 소절에서 박자나 리듬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날그날 달라지기에 항상 형님의 입을 보고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최태완의 경우 조용필의 뒷모습만 보고 있는데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 가왕의 ‘장꾸미’가 폭발했다. ‘친구여’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는 이태윤에게 예고도 없이 마이크를 넘길 때였다.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이태윤이 성공적으로 소절을 마치자 마이크로 그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는 모습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30년 케미’가 빚어낸 백미였다.

공연의 마지막 명장면은 팬들의 이벤트였다. 앙코르 첫 곡 ‘꿈’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일제히 ‘클라스는 영원하다’, ‘우리를 믿어 믿어봐 언제나 함께할게’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어 올리며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자 가왕이 응답했다. ‘꿈’, ‘바운스’를 지나 마지막 앙코르곡 ‘모나리자’에서 ‘감사합니다’라며 손을 흔들어 인사까지 마치고 들어가려던 중 가왕은 코러스(배영호·김효수)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도 연출됐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이날 공연의 최고 이벤트였다.

가왕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은 30년 넘게 함께 해온 최강 콤비다.
가왕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은 30년 넘게 함께 해온 최강 콤비다.


韓 대중음악 콘서트의 정점…첨단과 아날로그의 조화

가왕의 공연은 한국 대중음악 콘서트 무대의 정점에 서 있다. 해마다 열리는 그의 콘서트는 당대 기술력의 총아(寵兒)이자 아날로그 감성의 정수다. 초대형 LED 스크린은 정교한 미디어 파사드로 기능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교했으며 때론 화려했지만, 때론 절제의 미학을 살렸다.

‘자존심’ 무대에서 구현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민화 호랑이와 자개 문양, ‘추억 속의 재회’의 수직 하강 폭포 연출, 거대한 두 개의 손 모양 오브제가 중앙 무대를 감싼 ‘고독한 러너’, 그 손이 다시 영상 속으로 들어가며 서사를 완성한 ‘그래도 돼’, 탄자니아의 고고한 산봉우리를 조명으로 연출한 ‘킬리만자로의 표범’ 무대까지 곡마다 압권이었다.

여기에 무수히 많은 조명과 레이저까지 더해지니 공연은 시각과 청각 충격의 연속이자, ‘자본의 미학’까지 체감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아날로그의 정수가 묻어나는 순간도 만났다. 모든 영상을 배제한 채, 조명만으로 노래에 집중하도록 한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조용필의 공연은 기술과 인간, 예술세계가 조화를 이룬 노동집약적 콘텐츠다. 시대는 급격하게 인공지능(AI) 대전환기로 이동하나, 가왕의 무대는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대면 예술, 라이브 공연의 진한 감동을 증명했다. 58년간 흔들리지 않는 보컬리스트이자 창작자, 진정한 아티스트로 존재하는 가왕과 그의 ‘음악 연대기’를 완성하는 가왕의 가장 빛나는 그림자인 ‘위대한 탄생’의 무대는 인간의 노동과 예술이 결합해 탄생하는 최고의 마스터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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