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라 믿고, 조용필 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터널리 운영진의 전체 의견과 무관합니다.
*조용필 님의 음악을 재생해 두고, 차 한잔과 함께 한주 편안하게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弼의 서재 : 치유의 문장들] 1화. 돌아왔다, 부산항에
-조용필 1집 [돌아와요 부산항에] 中에서-
인도를 걷는 내 발걸음에 커다란 목련꽃잎이 밟혔다.
순백색의 목련이 순식간에 갈빛으로 변하며 꽃의 자태를 잃었다.
안타까웠다.
소중히 피워 올린 그 꽃을 나는 그리도 기다려 놓고는 손아귀 새로 놓쳤다.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지는 않았는가.
피고 지는 목련꽃 속에서 내가 놓친 기다림을 목도한다.
문득 몇 년 전의 어느 봄이 떠올랐다.
그날도 기다림을 발견한 순간이 있었다.
봄나들이를 나서던 날,
여느 때처럼 조용필 님의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놓고
남편과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차창 밖을 흐르는 봄꽃을 구경했다.
연분홍빛 벚꽃이 참으로 아름답다 느끼던 그 찰나,
뱃고동 소리와 함께 '빰빰빠빠밤빰빠~'하는 묵직한 전주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그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첫 구절에
동백꽃 피는 찬란한 '봄'이 있었다는 것을.
봄꽃이 아름다운 곳에서
끝 모를 기다림이라니,
그제야 알았다.
이 노래 속 기다림이 그토록 아팠던 이유,
내 그리운 이만 없다는 좌절이
그리도 고통스러웠을 까닭을 말이다.
순간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차창밖 꽃물결을 따라 흘렀다.
육아를 하며 내 꿈도 이루어보겠다며 치열하게 살았다.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살았다.
내 일상이었던 조용필 님의 음악도 자연스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꿈은 내게 오지 않았다.
연락선을 타고 날 찾아온 것은
꿈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
무참히 꺾여나갔다는 좌절이었다.
서둘러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아이들의 눈이 엄마인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조용필 님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울고 웃으며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덧 내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꽃을 보고 '예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의 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조용필 님의 간절한 목소리가 회상에 젖었던 나를 깨웠다.
돌아오라고 소리쳐 부르는 그 목소리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홀로 꽃을 피워 내 눈길을 기다렸을 그 목련처럼, 그리움을 담은 목소리였다.
"돌아와요, 돌아와요." 반복해 따라 해 보았다.
예전엔 무심히 넘겼던 이 말이 그날따라 입에 붙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다'는
한자로 '歸(돌아갈 귀)'라고 쓴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귀(歸)'자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보다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이나 스승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귀속시킬 때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러자 문득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며 '형제 떠난' 그 빈자리를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을,
예전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을,
내 삶의 스승이자 어른, 바로 조용필 님이었다.
기다리는 마음에 시간은 더디 간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그 품을 떠나 있었던가.
꽃은 이리도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내 마음에도 봄이 왔는데,
나는 왜 아직도 그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가.
나는 왜 그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금껏 돌아보지 못했을까.
지금의 평범한 일상은 조용필 님의 음악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 음악은 무수한 사랑으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살게 하고, 타인을 사랑하게 하였다.
조용필 님의 그 넓은 어깨에 기대어 내 눈물콧물만 닦아내고서,
나는 지금껏 모르는 척 염치가 없었다.
너무 받기만 했다.
그렇다.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제는 그 감사와 감동을 돌려주어야만 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생각했다.
자기의 자리에서 다정히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
멀리서 화살기도를 보내는 것,
한 줄의 글을 써서 올리는 것,
공연장에 찾아가 그 현장을 함께하는 것.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다시 시작했다.
아빠가 출타하시면 홀로 조용필 님의 음악을 찾아 듣던
다섯 살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떨어뜨릴까 과자 기름이 묻을까 걱정하면서,
작은 손으로 LP판을 조심히 들어 올리던 그 마음으로.
노래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듯 빠져들던 그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첫 마음으로 조용필 님의 노래 한 곡 한 곡을 다시 들었다.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썼다.
콘서트 장도 조심스레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감사를 표현하고 보니 내 마음속 감사가 더욱더 커져갔다.
더 큰 행동으로 나아가보고자 마음먹었다.
마음 한편에 담아두기만 했던 팬클럽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가고 싶다고 느꼈을 때,
그 품에 안겨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지금 이 순간 조용필 님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
팬클럽이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었다!
이제는 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그리운 당신을 향해 내 온 마음과 영혼을 담아
앞으로도 이렇게 곁을 지키겠노라고.
'돌아와요'로 시작한 노래가 '돌아왔다'로 끝난 것은 참 다행이다.
나는 이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올 때마다
마지막 소절을 더욱 힘주어 노래할 수 있다.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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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
잠깐 주차 하고 읽어봤네요..
넘 멋지다는 표현밖에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기득하게 하는 글이네요..
마지막 붉은 꽃그림에 돌아왔다 오빠품에.
이거 보고 내가 왜 설레는지..ㅎㅎ
좋은글 감사... 다음글이 기대됩니다.♡
저도 다시 돌아온 팬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빠도 굳건히 노래하시고 그 곁에서 변함없이
응원하고 있었던 팬분들께도 박수를 보냅니다.
설레는 봄에
다음에 올려질 글에 가슴이 살짝 떨립니다^^
필력이 너무 섬세해서 마치 화이님과 같은 공간에서 희노애락을 느낀 기분입니다. 오빠께서도 꼭 이 글을 보셨으면 좋겠네요, 오빠 음악의 다양성 만큼 팬들의 달란트가 정말 다양하네요. 금요일 밤의 좋은 글 너무 행복했습니다. 팬심이 막 막 차오르네요~
저는 오빠의 음악에 입덕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제인지 모르게 오빠의 음악에 빠져있었던 저의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습니다. ^^ 정회원단톡방 아이디는 'SK' 입니다. ^^
돌아왔다 부산항에~ 돌아왔다 오빠품에~ 빠바바밤~ 빠바바밤~
댓글 달기가 송구스럽네요. 어쩜 글을 이리도
멋스럽게 쓰셨는지. 에세이집을 읽은 듯
너무 좋은 글입니다.너무 감동하며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훌륭한 글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오빠를 향한 마음을
글로서 잘 표현 해
주시니 공감이 가고
감동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팬을
많은 오빠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빠의 팬으로서
이곳에서 함께 할수 있어
행복하고
오빠의 팬이라서
자랑스럽습니다
다음 에세이도 기대됩니다
글 넘 잘보앗어요^^
글에 폐키칠까 염려될 정도로 감동받고. 첨 오빠 공연 따라 다니던 생각도 나고 지난날. 애들키우며 놓쳣던 시기도. 생각이 나내요.
애들이. 그러더군요. 놓쳣던 시간많큼. 즐기라고
지금은 오빠께 푹빠져서 이터. 식구도 되고 화이님 글에 답도 쓰게되고.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 넘나 고마운 이터임니다
담글은 어떤 내용의 글이될지 기대 만땅 임니당
카톡 아디는. 필인형 임니다^^
감명 깊게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었네요.
<용필 형님에게 입덕한 계기>
-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한창 라디오 전파를 타던 시절.. 나 역시 노래에 빠져들었다.
1977년 초 육군에 입대, 연무대(논산) 훈련소에서 기본 군사훈련 중 휴식시간에 조교가 소대별 노래를 시키면, 서울 병력은 최헌의 '오동잎'을, 부산 병력은 어김없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1978년 첫 휴가를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중 버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분명 용필 형님 목소리여서 귀를 기울였고 제목이 뭔지 무척 궁금해 하며 음률과 가사 일부를 되새기며 기억 속에 담았다.
군 제대 후 나중에 그 노래가 '어디로 갔나요'인 걸 알았고, 1980년부터 형님의 활동 재개와 함께 더욱 형님과 노래에 심취한 것은 물론!
"문학소녀 나비리본님 최고!!!" 저는 이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돌아왔다 오빠품에" 이미지 직접 디자인 하신건가요 이것도 좋구요!
나중에 연재한 거 모아서 책으로 출판해 보세요. 반응 좋을거라 확신합니다 (나비리본님이 책에 들어 갈 이미지도 직접 만들어 출판하는거 적극적으로 추천)
나비 리본님이 예전에 예체능 전공자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나비리본님 (타고난) 재능이 있어보여요.
책 출판 하시면 싸인 부탁드려요^^!!!
다음 연재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유투부 영상 봤는데 자녀분들도 나비리본님의 재능을 물려 받았나봐요*
다시 봐도 맨 끝의 이미지가 화룡정점이네요.
우와~~~아름다운 우리 나비리본님^^ 혹시 작가신지요~~~~
이건 모 댓글로 허접함을 들킬까 두려울정도에요 ㅎㅎ
영원할것만 같이 오빠께 감히 투덜거리며 까분적도 있었죠~
이제는 한번한번의 공연이 더할수없이 소중한데요.
앵콜끝나고 들어가는 오빠보며 또 볼수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는데요.
이제는 공연 못해도 좋아요~우리오빠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세요~~
하게 되는데요~
하아~~오빠가 너무 보고 싶네요~ㅠ
세가지 직업(?)으로 바쁘고 지치다는 핑계로 이제야 이 주옥같은 글을 읽고 답해요.ㅠ
고맙고 대견ㅎㅎ해여 우리 화이작가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소중한 글들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