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리 창단 29주년!] 이터널리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조용필님의 들꽃 노래 듣기 클릭(출처 : YPC Company 유튜브 공식채널)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라 믿고, 조용필 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터널리 운영진의 전체 의견과 무관합니다.
*조용필 님의 음악을 재생해 두고, 차 한잔과 함께 한주 편안하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아빠, 저 조용필 콘서트 가고 싶어요."
내 나이 열여덟, 수능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한가로운 주말 오전,
아빠는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계셨고 그 순간이 내게는 기회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빠 앞에 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수없이 홀로 연습했던 한 마디를 내뱉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안달을 낸 것은 며칠 전에 우연히 들은 라디오 광고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듣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광고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 '조용필 콘서트'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앨범 한 장을 살 때도 지갑 속 돈을 그러모아야 했던 고등학생이
그보다 훨씬 비싼 콘서트 티켓을 자력으로 구매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께 손을 내밀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어서, 콘서트에 간다는 것을 이해 못 하실 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성격상 말수가 거의 없었던 분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려 애쓰셨다.
게다가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조용필 님 원조 팬이셨다.
이런 아버지가 날 야단치며 막아설 일은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우리 집의 경제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는 초유의 국가적 사태라는
'IMF'가 이제 막 지났던 때였고,
우리 집도 여전히 그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욱 염치 없었던 것은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 말수가 거의 없고 애교도 없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빠께 살가운 말 한마디 먼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주말에 가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우리는 침묵의 부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없이 지내다가 불쑥 콘서트 티켓을 사달라고 하면 속보이지 않을까?
생활비조차 걱정해야 할 시점에 콘서트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철없는 행동으로 보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18년 동안 앨범으로만 들어왔던 조용필 님의 음악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스스로 여러 번 포기하려 마음먹었다가도
앨범으로 조용필 님의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욕심이 솟으며 쉽게 포기되지 않았다.
'그래, 이번 한 번만! 철부지 어린아이가 되어보자!'
나는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홀로 되뇌며 연습했던 그 말을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신문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눈을 들었다. 아버지의 눈빛은 잠깐 깊은 고민에 잠긴 듯했다.
"... 그래, 아빠가 한 번 구해보마."
나의 요구를 철없다고 나무라지 않고 단번에 콘서트 티켓을 구해다 주신다니!
생각지도 못한 선선한 허락에 나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콘서트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뒤, 그제야 나는 아버지도 콘서트에 함께 가실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도 조용필 님의 팬이시니, 콘서트에 가고 싶으신 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아빠도 같이 가시는 거예요? 아빠도 오랜 팬이시잖아요."
아빠와 함께 콘서트를 보게 될 상상을 하니 더욱더 기뻤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 머뭇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글쎄, 나는......, 콘서트는 생소해서... 티켓은 한 장만 구할 테니 너만 보고 와라."
물론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아버지가 전보다는 음악을 덜 듣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말만 그리 하실 뿐이라고, 나는 그리 여겼다.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으니 티켓을 사주시려 하는 것일 테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조용필 님의 팬이었으니까,
아버지도 결국은 티켓을 한 장 더 구매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말이다.
콘서트 당일 날은 몹시도 추웠다. 아버지는 차를 몰고서 나와 콘서트 장까지 함께 가셨다.
함께 차에서 내려 자연스레 콘서트 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멈추었다. 아버지가 날 불렀다.
그리고는 외투의 속주머니에서 단 한 장의 티켓만 꺼내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내 철없는 예상은 빗나갔다. 한장 뿐인 티켓 앞에서 나는 망연했다.
"뭐 해. 어서 들어가. 콘서트 곧 시작하겠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콘서트 티켓 단 한 장이라니, 나는 아버지의 재촉에 목이 메인 채로 목례만 꾸벅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콘서트 극장을 향해 걸었다. 둘셋씩 짝지어 들어가는 사람들 틈을 홀로 비집고 들어가는 그 길이 왜 그리 추웠던가.
정해진 좌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홀로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자꾸만 아빠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빠도 함께 왔다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이리도 철없는 행동을 하여 아버지의 시간과 돈을 들이게 했는지. 스스로 한심하여 목이 메었다.
그러나, 그것은 콘서트의 막이 오르기 전까지의 마음일 뿐이었다.
앨범으로만 듣던 음악들이 내 눈앞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온 몸이 들썩거렸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으로만 보았던 조용필 님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큰 감격이었다.
무대 위에서 말씀을 나누시는 조용필 님의 모습은 생각보다 소탈했고 나의 아버지처럼 말수도 많지 않았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친근감이 들었다.
엘피나 씨디로 들었던 노래를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노래마다 앨범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에너지였다.
노래 가락마다 인간의 시간시간과 마디마디를
토닥여주고 위로해주는 듯 따뜻한 사랑이 가득했다.
슬픈 음악은 대신 울어주시는 듯 해서 위로가 되었고 신나는 노래는 함께 즐길 수 있어 위로가 되었다.
노래 한 곡 한 곡이 바뀔 때마다 울고 웃으며 고3 생활의 서러움을 씻어냈다.
1집부터 당시 가장 최신곡 앨범까지, 18년 동안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은 나였다.
뼛속 깊이 각인된 노래를 한 곡도 빠짐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은 그렇게 잊혔다.
두 시간 넘는 콘서트가 매우 짧게만 느껴졌다.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나는 아쉬운 마음에 콘서트 장을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지정석에 앉아 텅 빈 무대를 바라보다가, 극장 로비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추슬러 겨우 극장의 입구를 나서고 보니, 콘서트를 관람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빠져나간 듯 광장은 황량하고 스산했다.
매서운 겨울바람만 그 텅 빈 공간을 굉음을 내며 메우고 있었다.
광장 앞에 서고 나서야, 콘서트 장 코앞에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가셨을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는 철없이 혼자서 신나게 콘서트를 보고 나온 딸내미를 기다리고 계시리라.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꽤나 멀었다. 겨울바람이 내 두 뺨을 시리게 할퀴었다.
나는 문득 서러워져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서둘러 걸었다. 그런 내 발걸음 앞에,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 아빠?"
"콘서트 끝나면 데리고 가려고, 근처에서 기다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빠의 모습은 피곤한 듯했지만 여전히 너그러웠다.
말을 마친 아빠는 벌써 등을 돌려 저만치 걸어가셨다.
나도 그 뒤를 말없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날은 춥고, 콘서트는 언제 끝날 지 정확히 알 수 없고.
홀로 시간을 어림하며 이 근처를 서성였을 아빠.
여러 사람들 틈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내 모습을 찾았을 아빠,
노심초사 날 기다리셨을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아버지 당신께서는 정작 콘서트도 보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며,
운전기사 노릇까지 하고 계셨다.
이 모든 것을 별 내색 없이 이 모두를 자처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렇게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저 바위틈에 한송이 들꽃이여"
사춘기 이후, 아빠와의 거리감을 느끼며 나는 가끔 생각했다.
아빠는 여전히 너그럽지만, 어릴 때만큼 날 사랑하지는 않는 것이라고.
그러나, 아버지의 등뒤에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그 눈물은 모두 소리 없이 속으로 흘렀으리라.
그 속으로 삼킨 눈물은 아빠의 속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씨앗이 되고 새싹이 되어 들꽃을 피워냈으리라.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 가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날, 나보다 앞서 걷는 아버지의 등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수많은 들꽃을 보았다.
아무도 바라보아주지 않고, 자식마저 알아주지 않는 그 사랑을. 그러면서도 나를 향해 여전히 피어있는 그 들꽃을 말이다.
"그대는 내 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많은 꽃 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꽃집에 진열된 꽃은 주목을 받는다.
심지어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기도 어렵다.
부모의 사랑은 들꽃과 같다. 너무나 당연해서, 그리 해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을 주는 일생을 살아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 바로 그분들의 삶이다.
지금은 한창 봄, 꽃이 피는 계절, 조금만 눈을 돌리면 자리자리마다 꽃이다.
예전엔 그 자리에 꽃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 화원 속에 있는 커다란 장미만 예쁜 줄 알았던 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나도 화원에 핀 화려한 꽃보다는
길가에 핀 들꽃을 더욱 사랑할 줄 아는 성숙함이 아주 조금쯤 생겼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가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들꽃이 피어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만히 다가간다.
작고 작은 들꽃이 어쩌면 그리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한참을 들여다본다.
들꽃을 보면 표현하지 못할 사랑으로 가득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들꽃 속에 부모의 마음이 있다.부모의 마음이 들꽃으로 피었다.
오늘도 조용필 님의 '들꽃'을 들으며 생각한다.
아무 대가 없이 나만을 바라보아 주시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
평생 당신의 음악 안에 진심 어린 사랑을 담아 나누어 주시는 우리 조용필 님의 마음을.
부모님의 가슴, 조용필 님의 선율 위에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를
꼭 달아드리고픈 그런 오늘,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여전히 내가 미치기에는 너무나 높고 깊은,
어른다운 어른들의 들꽃같은 사랑에 감사 드린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들을 더욱 닮아가고픈
나의 마음을 이렇게 기록해본다.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산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 가리라"
-end-
*[弼의 서재 : 치유의 문장들] 다음 연재일은 5월 22일 금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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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자신을 사랑해준 누군가가 있으신가요? 떠오르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이번 글은 제 브런치에 있는 글을 변주하여 올립니다.
댓글10
역시나 기다렸던만큼 감동이 가득한 치유의 글이네요..
저 역시 잘나가던 아빠의 사업이 어떤 국가적인(?)사건을 계기로 끝도 없이 무너져버린 후라 공짜로 갈수 있는 공개방송 이외의 콘서트는 어쩌다 한번 큰맘을 먹어야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죠...
TV가이드에서 모집했던 음악가족 가입비 3천원을 엄마께 힘들게 말씀드려서 겨우 우편으로 보내놓고 혹시라도 배송사고 났을까봐 담첨자 발표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지...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의 큰사랑을 깨닫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끝이 없는 그 깊이를 좇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늘 죄송하고 또 죄송한 요즘입니다.
당연한 듯이 늘 곁에 있어주셨던 아빠들꽃이 온전히 지고 난 후에야 더 잘 해드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곁에 피어있는 엄마들꽃은 더 많이
사랑하고 또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네요..
마음이 뜨거워지는 치유의 글 오늘도 감사하고,
5월22일.. 기다리겠습니다.
글 속에 담긴 사랑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저도 곁에 계실때 잘해야지 하면서도 흘려보낸 시간들이 너무 많아요.ㅜㅜ 분발하겠습니다^^
어버이날 만난 보석같은 글을 읽다보니, 어릴적 엄마와 시장에서 옷을 구경하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나비리본님 회상의 계절처럼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주 하얀 솜잠바가 예쁘게 걸려 있었지요. 저 솜잠바 너무 예쁘다며 만지작거리고, 입어보고, 뭐 막 막 그랬지요. 그런데, 가격을 확인한 엄마는 딸의 막 막 그런 소망을 들어줄 수 없었나 봅니다. "나중에 사줄게" 하셨지요. 아쉬운 마음을 접고 귀가를 하였지만, 한동안은 그 예뻤던 하얀 솜잠바가 얼마나 떠오르던지요.
그런데 저만 그랬던게 아니었답니다. 그때 제가 입어봤던 하얀 솜잠바가 엄마가 보기에 참 예뻤다고, 이후 비슷한 솜잠바를 보면 그때 못사준게 맘에 걸려 내내 속상했었다는 이야기를 중장년이 다 된 딸에게 최근까지도 말씀하시며 미안해 하시곤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동네 자주 가시는 의상실에서 내가 입으면 예쁠 것 같은 옷들을 꾀 자주 구매하여 선물하십니다, 날이 추날이 추워지면 롱 패딩을, 날이 더워지면 냉장고바지를 회사에서 승진을 하면 청코트 등등을......아, 정말, 어버이 사랑에 목젖이 아파옵니다.
수많은 순간들을 살면서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흉터처럼 남아 가려움증을 남겨 주기적으로 시원하게 긁어내야 하나 봅니다.
오늘 글도 정말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수경 언니의 어머님의 마음이 아름다우세요ㅜㅜ 해주신 것이 훨씬 많으실텐데 왜 부모님들은 못해준 것을 더 오래 기억하시는지. 그것이 사랑이겠지요? 이제 수경 언니 옷을 볼때마다 수경 언니 어머님이 떠오를것같아요^^
오늘이 어버이날이에요~
아이들이 준비한 향기가득한 꽃과 맛있는 식사와 대전성심당까지 가서 사온 케이크에
용돈봉투까지..
많이 고맙고 행복했지요..
나도 이렇게 해드리고 싶은 엄마.아빠가 그리워 ㅠ ㅠ 그랬답니다...
화이님 글을 읽으니 더 그립네요...
어버이날, 정말 제대로 보내셨습니다! 자녀분들을 사랑으로 잘 키워내셨으니 돌려 받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사랑을 주고서도 받는것보다는 여전히 부모님께 사랑을 전하시고 싶어하는 솜사탕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며 저는 잘 하고 있나 다시 돌아보았어요.
비록 어렵더라도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픈 부모의 마음이 담긴 글이네요.
어버이날을 맞아 평소 내 어머니께 따뜻한 말로 다정다감하게 대해 드리지 못한 부끄러움에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항상 살뜰하신 성격에 평소 얼마나 잘하실지요^^ 반성은 제 몫입니다.ㅎㅎㅎ 따뜻한 댓글 감사드려요!
3화는 어떤 얘기일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잔잔한 감동이 있는 글을 올려주셨네요
학창시절 방송국에 가서 오빠 보는게
꿈이 었는데 시골에 살아 그 꿈을 못 이루고
남편이 티켓을 끊어줘서 40대가 돼서야
오빠공연을 처음 보게 되었네요
그 감동과 환희는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을거에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오빠공연을 볼수 있지만
학창시절에는 왜그리 어려웠는지 ㅎ
들꽃노래 한동안 안들었는데
화이님 글을 읽고 유튜브에서 여러차례 들었는데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이 편안해져 힐링이 되었어요~
어제 어버이날이라 엄마를 생각하면서 들으니
그 의미가 더 크게 와 닿네요
부모의 마음이 들꽃 노랫말 처럼 자신은 빛나진 않지만 자식들 위해서 헌신하신 부모님과 흡사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는 엄마께 전화만 드렸는데
내일 엄마 얼굴 보러 다녀올 예정입니다
화이님 계절의 여왕 5월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숙경님~소박한 제 글을 항상 소중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 글을 다시 쓰며 반성하면서 이번 주말엔 꼭 부모님 찾아뵈리라 싶었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아빠의 엘피판을 뒤져서 7집을 틀어 같이 들어볼 생각이예요. 어머님과 좋은 시간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