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님의 '아하! 그렇지(라이브 90)' 노래 듣기 클릭(출처 : YPC Company 유튜브 공식채널)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라 믿고,
조용필 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터널리 운영진의 전체 의견과 무관합니다.
어릴 적 집 앞에 단골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무렵부터 금요일 저녁이면
엄마와 함께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우리는 비디오테이프를 대여섯 개씩 빌려와서는
주말 내내 영화에 빠져들어 살았다.
그 당시엔 재미있는 영화가 그리도 많았다.
보고 또 봐도 봐야 할 영화가 쏟아졌고,
내가 너무 어려서 못 봤던
고전 영화까지도 섭렵하느라 바쁜 나날이었다.
1990년 어느 날, 그렇게 빌린 비디오테이프 중에
<첩혈쌍웅>이 있었다. 한 남자가 창밖을 돌아본다.
밤하늘 아래 교회의 십자가가 빛난다.
남자는 하모니카를 들어 올려 연주하기 시작한다.
하모니카 소리가 처연하다.
쓸쓸함과 외로움과 고독과,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그러나 꿈꾸는 미래에 대한 의심까지도
그 선율 하나에 실렸다.
<첩혈쌍웅>의 주인공 아정(小莊 / 주윤발 분),
살육에 능한 그의 손이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하는 순간
그의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장면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씩 다시 빌려서
주인공이 하모니카를 부는 장면을 돌려보고는 했다.
그리고 결국엔 아예 녹음기를
TV 앞에 대놓고 하모니카 선율을 녹음하여
소장해서 수시로 들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며 걸었지.
이렇게 저렇게 변한 것들도 많았지."
그로부터 서른여섯 해가 흐른 2026년 1월,
퇴근 후 집에 오니 조용필 님의
<라이브 90>LP 판이 도착해 있었다.
90년도라니, 문득 까마득해졌다.
조용필 님이 콘서트를 하고 계셨을 그즈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문방구에서 불량 과자를 사 먹고
친구와 수다를 떨던 시절,
엄마와 주말 내내 영화를
열심히 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조용필 님의 소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갔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흘러가 버린 한 때의 시간이 기록되어
36년 후, 내 두 손 위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깊이를 어찌 가늠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수십 년 전에 조용필 님이 띄운 편지를
이제야 받은 것처럼 소중했다.
서둘러 듣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이 없었다.
아버지께 전화하여
다음날 찾아가도 되는지 여쭈었다.
아버지 댁에 있는 턴테이블로
<라이브 90>을 함께 감상하고 싶었다.
LP판이 잘 보이도록 책장 위에
조심스레 세워두고는 저녁 일과를 시작했다.
식사 준비와 청소, 여러 잡다한 일들을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소파에 쓰러지듯 기댔다.
눈앞 책장에 LP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LP 타이틀 이미지를 나 또한 지친 눈으로
멍하게 바라보았다.
한참 그렇게 보고 있으려니,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무얼까, 그 그리움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생각이 났다.
그것은 영화였다. <첩혈쌍웅>,
하모니카를 불던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LP판의 배경으로 어우러진 붉은색과 청색빛은
마치 밤하늘 아래 속절없이 터지는 핏줄기 같았다.
조용필 님이 든 왼손의 마이크는
마치 총신과 같아 보였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어쩐지 모르게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독, 그 속에서 절규하듯 토해내는 선율,
삶을 갈망하는 비장미.
그것은 바로 홍콩 누아르 영화를
볼 때에 느꼈던 것이었다.
<라이브90> 속의 조용필 님의 모습,
그 타이틀 이미지는 1990년에 목격한
<첩혈쌍웅>의 미장센과 닮아있었다.
"밤을 새워 울던 날들도 있었고
사랑도 했지만 미워도 했지만"
서둘러 앨범을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느꼈던 감각이 진실일지 아닐지 알고 싶었다.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다.
하루 종일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만 기다렸다.
퇴근 뒤 집에 돌아온 나는
LP판을 들고 서둘러 아버지 댁으로 갔다.
비디오를 볼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집어넣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손가락에 힘을 가해 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비디오 플레이어가 테이프를
주욱 잡아당겨 들이는 그 손맛이 좋았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입장권을
얻은 것과 같은 쾌감이 있었다.
턴테이블도 마찬가지다.
나는 턴테이블의 바늘을 LP판 위에
직접 올리는 버릇이 있다.
기계의 힘으로 LP판 위에
바늘을 툭 떨어뜨리는 것은,
LP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특히, 조용필 님의 앨범은 더더욱 말이다.
나는 숨을 한껏 참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라이브 90> LP위로,
바늘을 살며시 제 자리에 놓아주었다.
그렇게 90년, 그날이 열렸다.
여기, 황금빛 수트를 입은 남자가 무대에 홀로 섰다.
그는 하모니카를 들고 진심을 다해 연주하고 있다.
하모니카의 선율 속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그 무엇이 담겨있다.
음악에 대한 사랑, 팬들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
황금빛 수트를 입은 그를 둘러싼 수없는 진심들이 있다.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한
한 순간 한 순간은 투쟁이다.
그가 마이크를 들면, 그를 둘러싼 이들의 함성소리가
그를 향하여 마치 총탄처럼 순식간에 발사된다.
서로를 향해 자신의 생을 증명하는 한 순간,
서로가 서로를 지켜내며 함께 하는 한 순간은
이렇게 찬란했다.
엘피판에 기록된 90년은 이토록 뜨거웠다.
어찌할 수 없는 함성소리가 내 귀에 먹먹하게 들려왔다.
조용필 님의 한마디 말, 한 마디 곡조에
튕겨져 나오는 뜨거운 함성,
스피커를 넘어 뛰쳐나오는
그 강렬한 에너지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첩혈쌍웅(牒血雙雄),
피가 낭자한 전장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두 영웅,
1990년 라이브 콘서트 속의
두 존재야 말로 첩혈쌍웅이었다.
마이크로 전달되는 곡조마다 총탄소리처럼
반사적으로 들려오는 함성,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의 소리와 에너지로
상대방의 치열한 현실의 순간을 지켜주는
조용필 님과 팬의 모습,
그것은 의리로 똘똘 뭉쳐있었다.
우리가 지나오는 대부분의 시간은
상처와 불안 속에 존재한다.
몸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상처받은 과거와
실패할 것만 같은 미래 사이에 있다.
홍콩의 누아르 액션 영화가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상처와 불안이 폭력과 무기와
생사를 넘나드는 극적인 서사로 상징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도 전설은 피어난다.
차가운 금속으로 되어 있는
하모니카 속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는 순간,
그것은 전설이 된다.
<라이브 90>과 <첩혈쌍웅>의 미장센은
그렇게 닮아 지금도 전설로 남았다.
그러나 그 전설의 결말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하모니카는 불안과 희망사이에서
흔들리는 가녀린 것이라면,
조용필 님의 하모니카는
절대고독의 우물에서 퍼올린 맑은 물 같은 선율이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움,
청량하고 시원한 목 넘김이 있는
치유의 물이었다.
쉽지만은 않은 삶 속에서도
북극성과 같이 올곧은 마음이 담긴 선율이었다.
<첩혈쌍웅>의 하모니카 선율은
가상의 서사 안에서 비극으로 치달았지만,
<라이브 90>의 하모니카 곡조는
현실의 삶에서 여전히 서로를 지켜주는
거대한 사랑의 선율이 되었다.
"흘러 흘러가버린 세월은 이젠 다시 내게 말해주네."
<라이브 90>에 담긴 조용필 님의 노래와
팬들의 함성은 서로의 생(生)을 향한
순수(純粹)의 결정체다.
놀라운 것은 그 순수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나이에 맞는 성숙으로
서로를 지켜 내는 힘은
그 순수한 진정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순정 하나로 시공간을 공유했던 그 순간,
이토록 치열하게 서로를 증명해 주었을 그 순간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그렇게 부러웠다.
조용필 님의 하모니카의 선율을
왜 이제야 듣게 되었을까 통탄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마치 콘서트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듯이 말이다.
<라이브 90>을 듣는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유하는 시공간이 마치 스치듯 지나가는 것처럼
짧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서로가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리라.
"돌아보면 미운 사람 없더라. 스친 것도 사랑이어라."
스친 것도 사랑일진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서로를 품고 있는 조용필 님과
그를 사랑하는 우리는, 사랑을 넘어 운명일지도 모른다.
<라이브90>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운명을 잡을 수 있어 다행이다.
조용필 님의 공연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까.
*[弼의 서재 : 치유의 문장들] 다음 연재일은 6월 12일 금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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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읽으면서 생각했네요..
아 어떻게 오빠의 오래전 콘서트와 '첩혈쌍웅' 이라는 영화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거지?
오빠의 한마디에 터져 나오는 팬들의 함성이 방아쇠를 당기면 발사되는 총탄 같다는 비유가 왜 이렇게 안성맞춤이지?
같은 듯 흘러가다가 하모니카 이야기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마는 것이 내심 아쉽지만 그 또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멋진 표현인 듯...
두 선율의 하나는 비극을 향해 가고 하나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거대한 사랑의 선율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고...
덕분에 정말 좋아하는 주윤발 배우의 영화와 우리 오빠의 콘서트를 동시에 추억 할 수 있었네요..
하루의 피로를 싸~악 녹여주는 치유의 문장들 정말 감사합니당.^^♡
상옥님께서 첩혈쌍웅을 사랑하시는군요! 그 마음이 한껏 느껴집니다. 저에게도 첩혈쌍웅과 주윤발은 최고의 영화. 최고의 배우랍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소중한 감상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90 콘서트를 첩혈쌍웅과 비유가 꽤 흥미롭네요.
'90 콘서트를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이 앨범은 이후 35주년, 40주년, 45주년 실황 앨범에 비해 팬들의 함성이 크게 담겨 있어서 라이브 실황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죠.
용필형님은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노래에서 가끔 하모니까를 연주하시는데, 그 선율에 촉촉히 젖어들곤 합니다.
첩혈쌍웅에서 주윤발의 하모니카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분위기인지 VOD를 봐야겠네요.
어젯밤에 첩혈쌍웅 VOD를 봤는데 초반부의 위 이미지 장면에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하모니카 연주가 나오는데 서글픈 곡조네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도 홍콩 느아르 영화를 좋아하셨나 보네요. 당시 한창 유행했던 장르였죠.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화이님의 글을 읽다 보면 종내에는 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를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저도 그렇게 부럽습니다. 또한 지금은 그 운명의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제가 언젠가는 다시금 부럽겠지요. 참으로 오빠와 우리 팬들의 서사는 매 순간 찬란한 것 같습니다. 읽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림으로 가득 차오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