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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弼의 서재:치유의 문장들] 08화.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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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7-24 19:10:34 조회수 100

[弼의 서재:치유의 문장들] 08화.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라 믿고, 

조용필 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터널리 운영진의 전체 의견과 무관합니다.
 



 

 

[弼의 서재:치유의 문장들] 08화.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 님의 '꿈' 노래 듣기 클릭(출처 : KBS 이순간을 영원히)

 

 

슬퍼질 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 <꿈>13집-

 

 

 

 

 

미대 진학을 목표로 했던 삼수가 실패로 끝나고

지방 사람인 내가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던 것은 그저 우연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부모님 곁에서 그림을 전공하며 부모님의 삶을 계승하고 싶었지만

운명은 내게 그러한 안락을 허락하지 않았나보다.

 

 

그러나 <I LOVE 수지>처럼 언제나 먼 곳을 동경하던 나의 꿈은

한편으로는 그렇게 예상치 못한 기회로 날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였음에도,

스스로를 세상 다 살아본 늙수구레한 사람처럼 여겼다.

여러번의 대입실패를 경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겁많은 내가 서울 생활을

선뜻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되었으리라.    

 

 

그러나 서울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위대한 서울 앞에서 당황하였다.

기차 도착 시간이 연착되어 생각보다 늦은 시각에 용산역에 도착했다.

나는 짐을 잔뜩 짊어진데다 서울의 밤거리를 헤맬 자신이 없어 고민했다.

내가 살던 지방은 이쪽 끝과 저쪽 끝을 택시로 이용해도

5천원 정도나 나오던 시절이었다.

 

 

'오천원이면 못낼 것도 없지.'

하며 나는 자신있게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그런데 택시 미터기 요금이 벌써 5천원을 넘어섰는데,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하며 버티니 요금은 만원이 넘었다.

 

 

지하철로 한 두번 오갈 뿐이었던 대학교 앞으로 가는 길,

이렇게 멀었던가 싶었다. 납치 되어가나 두려웠다.

그러나 한강을 건너고 익숙한 장소를 지나는 것을 보니

그런대로 택시는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요금이었다.

요금은 어느덧 2만원을 넘어섰다.

중간에 택시를 정지시켜야하나 거듭 고민하며

좌불안석으로 식은땀을 흘릴 때에야 택시는 멈춰섰다. 

위대한 서울의 길 위에, 나는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첫날 택시비에 탕진하고야 말았다.

 

 

첫날의 일을 교훈 삼아서 나는 지하철을 애용했다.

그런데 지하철을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지하철 역에 서 있던 내게

차비가 꼭 필요하니 천원만 달라고 하셨다.

나는 거침없이 천원을 주었다.

 

 

몇달 뒤 다른 지하철 역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만원만 빌려달라고 하셨다.

나중에 꼭 갚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만원, 내게는 큰 돈이었지만

망설임을 끝내고 돈을 드렸다.

정말로 급한 일이 있을 것인데, 만원 한 장으로 

도울수만있다면 어르신을 돕고 싶었다. 

갚겠다는 말씀은 정중히 사양하고 기분 좋게 만원을 드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지하철 역에서 만원을 빌려주었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할아버지는 나와 조금 떨어져 서 있는 다른 여성분께 만원만 빌려달라고,

꼭 갚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말한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빌려달라는 말은 그냥 달라는 말과 같았고,

갚겠다는 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 

 

 

65세 이상의 노인 분들은 지하철이 무료라는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차비할테니 천원만 달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지하철 역에는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 순수한 호의는 그렇지 않아도 사정이 좋지 않은 유학생의 지갑에서

천원, 이천원, 만원 단위로 쏠쏠하게 소모되었고 나는 참담함을 느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을 돕고 싶어

구매한 손톱깎이는 금방 고장이 났고

구두약은 별 효과를 못봐 금방 버려졌다.

 

 

늦은 밤, 내 자취방이 있던 골목길에 '찹쌀~떠억~!' 하는 소리에

반갑게 문을 나서서 가격을 물었다. 찹쌀떡 네개에 2만원이라고 했다. 

깜짝 놀란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서둘러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자꾸만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마음을 쓰는 일에 점점 지쳤고 나는 냉담해져갔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지쳐서였는지 몰랐다.

 매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한문책을 펴고 자정이 되어서야 덮는, 

악착같은 시간들이 내 일상이었으므로 더욱 힘들었는지 몰랐다.

 

 

대학교 3학년 1학기가 서서히 저물어가던 6월 초입의 어느 날, 

나는 맹자수업을 수강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앉아있었다. 

버스 차창밖으로 종로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났다. 

이상하게도 서울이라는 도시의 밤풍경은, 

휘황한 그 자태와 달리 내겐 언제나 낯설고 차가웠다. 

3년을 내리 보아왔지만 3년 내내 그리했다. 

나는 그 날도 네온사인의 온도는 도대체 몇도일까 가늠하며, 

서울은 도저히 정붙일 수 없는 곳이라며 홀로 생각했다.

 

 

MP3플레이어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곧바로 조용필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꿈>이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정말로 눈물이 흘렀다. 버스안에서 누군가

나를 볼까봐 얼른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고 또 삼켰다.

뜨거워진 목구멍이 얼얼해졌다. 

화려한 도시, 꿈을 쫓아 올라온 곳,

내게 있어서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그러나 서울은 <꿈>의 가사처럶 춥고도 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본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갈때까지도

서울은 내게 춥고도 험하고, 그리고 배 고픈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날 버스에서도, 자취방 앞 골목에서도,

학교 건물 사이사이 구석진 곳에서, 도서관 옥상에서

뜨거운 눈물을 혼자 많이도 먹었다.

 

 

그러나 내 눈물은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고픈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대학을 벗어나고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그리고 드디어

목표했던 시험에 합격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그제야 늪을 빠져나왔다고 안심했다. 

 

 

댓글1

  • ♡솜사탕♡
    2026-07-25 07:03:48

    넉넉치못한형편의 부산이 고향인 남편이 이렇게저렇게 현생에 치이며 살다가 꿈을 들으며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님덕분에 부유하게 자란 서울공쥬님>..<은 당췌 마음 속 깊이 공감이 안갔어요.
    지방사람의 서러운 서울살이가 그렇게도 시렸다더라구요.
    오빠 공연에 함께 가면 '꿈' 부르실때는 여지없이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쓱 보고는 모른척 하곤 하죠.
    토닥토닥~;;;
    애썼어요~리봉님~♡♡♡
    가슴절절하게 부르는 오빠 '꿈' 들음 저도 눈물 나겠어여..
    오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는거져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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